진귀한 목조탱화가 있는 ‘지리산 약수암’
-혼자 걷기 좋은 암자 가는 길
암자로 가는 길은 표식이 없다. 어디로 가고 어디를 에둘러 가야한다고 일러주는 것은 속세의 일이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걸으면 그만이다.
실상사에서 약수암으로 길을 잡았다. 아직 햇볕은 가을을 맞이할 마음이 없는지 나그네를 괴롭힌다. 누런 들판을 지나니 나무 아래 작은 그늘이 있었다. 잠시 땀을 식히고 있으니 스님이 앞질러간다. 어디를 가는 것일까. 구름이 하늘을 가린다. 땡볕에 지친 스님 한 분은 우산을 양산인양 뒤를 따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스님 둘, 나그네 하나. 길 위에 섰다. 黙言. “어디를 가시는지요?” 스님이 먼저 적막을 깬다. “약수암에 갑니다.” “10여 분 가다가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가시면 암자가 있습니다.” “예, 얼마나 걸릴까요?”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사십 분 정도면 보일 겁니다.” “고맙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의 깊은 숨소리만 희미하게 느낄 뿐이었다.
갈림길에 이르니 ‘약수암’이라고 적힌 나무 팻말이 외로이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스님은 다른 길로 접어들어 이제 혼자가 되었다. 간간히 비탈진 길에 시멘트가 놓여 있었지만 암자 가는 길은 비포장 흙길이다.
소나무, 잣나무, 바람, 새소리, 들꽃. 이들을 벗 삼아 산길을 걷는다. 길은 적막에 쌓여 있다. 좁은 소롯길이었을 암자 가는 길은 차 한 대가 너끈히 오를 수 있도록 넓혀졌다. 그래도 찾는 이 없으니 걷기에 좋다.
들리는 소리는 하늘을 가르는 바람과 숲에서 우는 새소리, 발밑에서 자박자박 울리는 자갈 소리뿐이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픈 기억도, 기쁜 추억도, 신경 쓰였던 일상들도 떠오르지 않는다. 머리는 이미 비어 허공에 있다.
깊은 침묵 속에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즈음 상무주를 가리키는 팻말이 보였다. 암자 가는 길 ‘도마마을, 상무주, 문수암’이라고 적혀 있다. 실상사에서 시작되는 암자 산행은 약수암, 삼불사, 문수암, 상무주암, 영원사를 거쳐 도솔암까지 이른다. 이름 하여 ‘칠암자 순례길’로 불리는 길이다.
이 순례길은 건각이 아니면 하루에 다 돌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대개 영원사에서 삼불사를 거쳐 도마마을에서 하산하거나 여유가 있으면 다시 약수암과 실상사까지 가게 된다.
숲에 가린 암자는 햇빛 넘치는 땅에 있었다. 암자 앞으로는 능선들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암자의 전각은 보광전과 요사채가 전부이다. 다만 적송과 울창한 잣나무, 푸른 대숲이 어울려 암자 주위를 푸근하게 감싸 안는다.
경내에 항상 맑은 약수가 솟는 샘이 있어 약수암으로 이름 지었다는 암자는 경종 4년인 1721년에 천은스님이 창건하였다. 약수암은 인근 백장암과 더불어 실상산파의 수행처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법당인 보광전 안에는 현존하는 조선후기 목조탱화 6점 중의 하나로 가장 간략한 배치구도를 보여주는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목조탱화는 천이나 종이에 그리는 일반적인 불화와는 달리 나무에 불상을 조각해서 만든 탱화를 말한다.
이곳의 목조탱화는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하여 조각수법이 화려하고 엄숙하나 조각이 획일적이어서 개성이 없는 단조로움을 느끼게 한다. 탱화전체는 금분으로 도금되어 있다. 보물 제4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암자에는 인기척 하나 없다. 스님은 출타중인지 보이지 않고 해우소에 지게 하나 매달려 있을 뿐....... 잎이 물들기 시작하였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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