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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

맨발로 오를 수 있는 ‘호남의 금강’, 순창 강천산




 

맨발로 오를 수 있는 ‘호남의 금강’, 순창 강천산

-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


 순창하면 으레 고추장을 떠올리지만 고추장만큼 붉은 단풍이 온산을 뒤덮는 강천산은 순창 제일의 자랑이다. 강천산은 굳이 가을이 아니더라도 사철 아름다운 수십 리 계곡과 맑은 물을 안고 있어 호남의 금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신라 때 창건된 강천사는 열두 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옛 영화를 찾을 길 없지만 산의 중간쯤에 있어 오고가는 길손들이 잠시 휴식을 하며 산사의 깊은 내력에 빠져든다.


 

 번잡한 주차장을 벗어나면 이내 단풍나무가 길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바닥이 보도블럭으로 되어 있어 걷는 양이 영 상그럽지만 이 실망은 오래지 않아 감탄으로 이어졌다.


 

 어디서 물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병풍을 두른 듯한 벼랑에서 세찬 물줄기가 쏟아진다. 족히 40여 미터는 넘을 장쾌한 폭포 옆으로 10여 미터 정도의 애기폭포가 앙증맞게 물을 내뿜고 있었다. 병풍폭포라 불리는 이 폭포는 인공폭포임에도 전혀 눈치를 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다. 시원한 폭포의 물줄기가 바람에 날려 사정없이 얼굴을 때린다. 시원하다.

 

 폭포 옆을 거닐다 “송어다”라는 소리에 짐짓 놀라 계곡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수십 마리의 송어가 떼를 이루어 이리저리 계곡물을 유영하고 있었다. 물이 너무 맑아 송어의 비늘까지 선명히 보일 정도였다. 1급수의 맑은 물에서만 자라는 송어에게는 이곳 강천산 계곡이 서식처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폭포를 벗어나니 흙길이다. 시리도록 맑은 계곡물에 다가가고 싶었다. 이번에는 팔뚝만한 송어 대신 피라미가 무리를 지어 맑은 물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작은 물고기로만 여겼던 피라미였는데 이곳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이다. 냇돌에는 검은 다슬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이곳의 물이 깨끗함을 애써 이야기할 필요가 없음을 알겠다.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먼지를 털어내고 발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맨발로 오르는 산이라....... 여간 감동스럽지 않다.


 

 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 신발을 벗은 채 흙길을 토닥토닥 걷고 있었다. 어린 아이는 맨발로 걷는 것이 낯선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언니 오빠의 손을 꼭 잡고 걷는다. 발에 감기는 땅의 기운을 아이들이 듬뿍 받고 자란다면 그들도 자연의 소중함을 몸으로 알게 되리라는 생각에 흐뭇해진다.


 

 잠시 하늘을 보았다. 단풍이 물들기에는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겠지만 하늘과 바람과 햇살에 비친 단풍은 붉지 않아도 이미 아름다웠다. 강천산의 단풍은 애기단풍으로 그 붉은 아름다움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강천사에 이르자 냇가에 수십 기의 돌탑이 온 계곡에 가득 차있었다. 누군가 시작해서 하나 둘 쌓기 시작한 것이 계곡의 돌탑숲을 이루었다. 물이 마른 계곡의 허전함을 돌탑이 메워주고 있었다.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이 서로의 사진을 찍는 모습이 간절하다. 행복하시길.......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 1년인 887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충숙왕 때는 열두 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천여 명의 스님이 머물던 큰 절이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탔고 소요대사가 재건하여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다 한국전쟁 때 모조리 불타버려 지금의 건물들은 근래에 지은 것이다.


 

 옛 맛을 간직한 유일한 것은 지붕돌이 많이 파손되어 조금은 민망한 오층석탑이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천사 뒤란에는 선홍색의 꽃무릇이 한창이다. 젊은 아가씨들이 쾌활히 웃으며 서로의 추억을 찍고 있었다.


 

 절마당을 나서니 거대한 모과나무가 길 한 편에 서 있었다. 3백여 년의 나이를 먹은 모과나무에는 모과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려 있다. 얼마간 걸으니 이때까지의 평지와는 달리 가파른 계단길이 나왔다.
 


 약간의 긴장감을 느낄 즈음 어느새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보면 50여 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며 허공에 매달린 구름다리와 강천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출렁거리는 구름다리를 건너려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월출산의 구름다리보다 높이는 낮음에도 긴장을 주기는 매한가지였다.


 

 구름다리를 건너 산봉우리로 향하지 않고 계단을 내려와 구장군폭포로 향했다. 구장군폭포로 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두어 번 건너야 한다. 징검돌이 놓인 이 계곡을 건너는 것도 매력이 있다. 손을 씻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모습이 다정하다.


 

 숲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면서 산속의 평지가 나왔다. 120여 미터의 높이에서 벼랑을 타고 떨어지는 두 줄기의 폭포가 장관이다. 남근석과 여근석의 조화로운 형상을 의미하는 구장군폭포는 반 인공폭포임에도 감동스럽다.


 

 옛날 마한시대 혈맹을 맺은 아홉 명의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곳에 이르러 자결하려는 순간 차라리 자결할 바에는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자는 비장한 각오로 마음을 다지고 전쟁에 나가 끝내 승리를 거두었다는 아홉 장군의 전설이 이곳에 전해지고 있다.



 폭포 일대는 성을 테마로 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음’과 ‘양’이 서려있는 폭포의 의미를 따라 각종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폭포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저수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나의 강천산 여행은 끝이 났다.



 

 강천산은 전북 순창군에 있으며 담양방면에서 출발하면 수십km에 달하는 메타세콰이어길을 따라 오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강천산 입구에서 병풍폭포, 강천사, 구장군폭포, 저수지까지의 산책길은 넉넉잡아 왕복 2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이곳의 단풍은 10월 말경 절정에 달한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