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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여행의 기술, 칼럼

'1박2일', 내비게이션과 지도 어느 것이 좋을까



'1박2일'을 보며, 내비게이션과 지도 어느 것이 좋을까
여행자의 오랜 친구 '지도' VS 새 친구 '내비게이션'


 석 달 전
처음으로 내비게이션(이하 '내비')을 구입하였다. 여행을 다닌지가 십 여년이 되었지만 지도에만 의존하여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이런 나에게도 내비의 유혹은 떨칠 수가 없는 달콤함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처음 내비의 편리함을 맛본 후 구입욕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도시의 복잡한 도로망은 시골 촌놈에게 내비를 구입해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내비를 처음 사던 날 차량에 설치를 못해 끝내 단골 카센터를 찾았다. 단골 사장은 내가 기계치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별다른 말없이 설치를 해주었고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한달 여 동안은 예전의 지도를 팽개치고 내비에만 의존하여 신나게 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르자 옛 사랑의 희미한 기억처럼 지도를 다시 찾기 시작하였다. 내비의 편리함이 채울 수 없는 나의 옛 친구 '지도'의 매력을 그때서야 나는 깨닫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내비와 지도를 병행해서 사용한다. 두 달 여 동안 내비와 지도를 같이 사용하면서 느낀 점을 써 보았다.

십 여년 사용한 지도, 최근에 새로 하나 구입하였다.

1. 현재 위치 파악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둘 다 장단점이 드러난다. 지도(여기서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국지도 축척1:600,000을 기본으로)는 현재의 위치를 전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그에 비해 내비는 세부적으로 하천의 흐름, 마을 이름, 길의 상태 등까지 세밀하게 표현해 준다. 물론 군이나 면 단위의 지도에도 살필 수 있지만 여행 중 다량의 지도를 지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내비가 좀 더 세밀한 잇점이 있었다.



2. 경로 안내
 지도는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해 사전에 경로를 숙지하고 이동 중에도 끊임없이 눈으로 살펴야 한다. 그에 비해 내비는 이름과 주소만 정확히 입력하고 귀만 쫑긋 세우면 목적지까지 안전히 모신다. 내비의 장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22일 방영된 '1박2일'에서도 내비의 진가가 드러났다. 물론 강호동팀이 지도에 능숙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여행 초보자에게는 확실히 내비가 유용하다.



3. 여행의 재미
 여행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새로운 길에 대한 동경이다. 그러다보니 내비에 의존하면 여행의 재미가 반감된다. 편리를 얻는 대신 즐거움을 내어준 셈이다. 모르는 길을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것이 여행의 또다른 묘미이다. 1박2일에서 이수근팀은 내비에 의존해 매화마을까지 곧장 도착하였는데 비해 강호동 팀은 길을 물어 물어 늦게 도착하였다. 그런데 이수근팀은 목적지 가는 길에 차안에서 본 매화가 전부인데 비해 강호동팀은 현지 주민들에게 길을 물으면서 대화도 하고 차에서 내려 잠시 주위 풍광도 보게 되는 등 길을 헤매는 과정에서 소중한 추억을 얻게 되었다. 여행의 참맛은 목적지보다 길 위에서 얻게 된다.

4. 나홀로 여행
 혼자 여행할 경우 내비는 동반자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안내 멘트를 '사투리 버젼'이나 현영 버젼 등 자신의 취향대로 조정하면 길을 가는 동안 심심하지는 않다. 간혹 길을 잘못들면 잔소리가 계속되는 흠이 있지만 말이다. 이에 비해 지도는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중간중간 차를 세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나 길을 찾는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과 대화를 하게 되고 그곳의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5. 길치 VS 기계치
 나는 고백컨대 기계치다. 형광등 교체도 잘 못하는 어리숙한 인간이다. 소프트 쪽으로는 그나마 괜찮은 축인데, 이놈의 하드가 문제다. 대신 길눈은 밝다. 오랜 동안의 여행에서 비롯되었겠지만 감각만으로도 길을 찾곤 한다. 기계치인 나에게는 기능을 익히는 게 여간 곤욕스럽지 않다. 그래서 아주 기본적인 기능만 알고 사용한다. 반대로 길치들에게는 내비가 더 유용하다. 간혹 지도를 못봐 당황하는 이들을 종종 보았다. 결국 여행지가 아니라 한 장소를 몇 번이나 돌곤 한다. 길치에게는 지도보다는 내비가, 기계치는 지도가 더 유용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6. '촌놈' 지도와 '도시놈' 내비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다. 내 경험으로는 시골에서는 지도가, 도시에서는 내비가 더 강력하다. 물론 주소 검색을 하면 내비도 아주 작은 마을까지 찾아낸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름나지 않는 장소는 번지 수가 있어도 간혹 에러를 내는 경우가 있다. 도심에서는 단연 내비의 역할이 돋보인다. 도로가 공사중이거나 부산같이 도로망이 복잡한 곳은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7.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
 여행을 다니다보면 항상 떠오르는 화두가 '개발과 보존'이다. 난 어느 한 쪽 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옛 길이나 보존 가치가 있는 곳은 불편하더라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보존만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편리를 위해선 개발도 필요하다. 다만 최소한도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기반시설이 안정화되고 개발이 가속화된 작금의 한국 현실에서 생태학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다. 지도만을 고집하던 내가 내비를 사고난 후 시간 절약과 편리를 얻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도를 팽개치지는 않았다. 내비를 활용하되 그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았다. 지도와 내비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라는 걸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다.

 지도와 내비를 같이 사용하면서 소박한 깨달음은 어느 한 쪽 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4대강 유역 개발의 문제도 그러한 맥락에서 바라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편리함을 얻는 대신 영혼을 잃는' 어리석음을 우리 후대에게 물려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