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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행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일본 구마모토 성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일본의 3대 명성, 구마모토 성

일본어 한마디 못하면서 무조건 떠난 배낭여행⑤-1, 구마모토 성

 

▲ 나가베이와 쓰보이 가와 강 나가베이는 일본의 국가지정중요문화재로 길이가 242m이다. 현재 구마모토 성에 남은 성벽 중 가장 길다.

 

노면전차에서 내리자 시간은 되돌아왔다. 횡단보도를 건너 구마모토 성으로 향했다. 성문으로 가는 골목길 바로 아래로 쓰보이 가와 강이 흘렀고 그 건너로 높은 성벽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검은 강줄기 너머로 굳게 버티고 선 잿빛의 높고 기다란 성벽의 끝에는 하얀 누각이 아스라이 솟아 있어 흑백의 대비가 선명하다. 이 성벽을 ‘나가베이(長塀)’라 한다. 길이가 242m인데 현재 구마모토 성에 남은 성벽 중 가장 길다.

 

▲ 나가베이의 안쪽 모습 성벽의 안쪽으로는 돌기둥을 세워 오리목으로 고정시켰다. 성벽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성의 바깥과는 달리 안쪽에서 이 나가베이를 보면 조금 높은 담장에 불과하다. 흰 회반죽의 벽에 판자벽인 ‘시타미이타(下見板)’를 붙여 일본식 기와인 ‘산가와라(棧瓦)’를 올렸다. 내 시선을 끈 건 돌기둥을 세워 오리목으로 고정시킨 것이었다. 성벽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돌기둥과 오리목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 가토 기요마사 동상 성 입구 작은 광장에 있다.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 때 선봉장으로 고니시 유키나가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인물이다.

 

구마모토 성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거친 사내의 과묵한 모습이랄까. 나중에 천수각을 봤을 때는 그 사내가 무사였으리라 생각됐다. 무장을 하지 않았지만 감출 수 없는 백전노장의 모습이 첫인상이었다면, 천수각은 갑옷에 투구까지 무장을 완벽히 갖춘 무사의 모습이었다.

 

▲ 하제카타몬 성의 입구인 하제카타몬에서 구마모토 성으로 들어간다.

 

성 앞으로 흐르는 쓰보이 가와 강은 그 자체로 해자이다. 난공불락의 구마모토 성을 깊은 물줄기가 두르고 있으니 개미 한 마리조차 얼씬할 수 없다. 다만 더위를 피해 성 밖 커다란 나무 아래 모여 있는 십여 명의 노인들만이 이곳의 엄숙하고 위태로운 풍경을 느긋하게 해 준다.

 

▲ 구마모토 성 천수각으로 오르는 길은 이중 삼중의 높은 성벽들로 둘러싸여 있다.

 

일본의 3대 명성, 난공불락의 구마모토 성

 

다리를 건너기 전 작은 광장에서 동상 하나를 만났다. 가토 기요마사이다. 구마모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둘 있는데, 가토 기요마사(1562~1611)와 사이고 다카모리(1828~1877)이다.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 때 선봉장으로 고니시 유키나가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인물이고, 사이고 다카모리는 메이지유신을 성공으로 이끈 유신삼걸 중의 한 명으로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 구마모토 성 천수각으로 오르는 길은 이중 삼중의 높은 성벽들로 둘러싸여 있다.

 

구마모토 성은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이 끝나고 귀국한 뒤 7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1607년 완성했다. 이 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고야 성과 더불어 일본의 3대 명성으로 불린다. 성의 둘레만 9km에 달하고 ‘축성의 귀재’라 불리는 가토 기요마사의 작품답게 성벽이 매우 가팔라 ‘쥐도 기어오를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특히, 성의 입구인 하제가타몬에서 엄청난 높이의 석벽 니요노 이시가키를 지나 7층의 천수각을 오르다 보면 이 말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구마모토 성 천수각으로 오르는 길은 이중 삼중의 높은 성벽들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많이 허물어져 천수각, 혼마루, 우토 야구라 등 일부 건물만 남았지만 이들 건물과 성벽만 봐도 구마모토 성의 위용을 알 수 있다. 난공불락이라는 이름답게 구마모토 성은 1607년에 지어진 후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다. 깊은 해자가 성 밖을 흐르고, 그 안으로 높은 성벽이 있고 다시 이중 삼중으로 높은 성벽이 둘러싸 있어 성을 함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 구마모토 성 천수각으로 오르는 길은 이중 삼중의 높은 성벽들로 둘러싸여 있다.

 

성문을 지나 천수각으로 오르다 보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성벽과, 성벽 사이로 지그재그 미로처럼 난 길과,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는 방어벽과 맞닥뜨리다 보면 싸우기도 전에 지칠 법하다. 하나의 성벽을 지나면 다른 성벽이 앞을 막고, 다시 성벽을 오르면 또 다른 성벽이 가로막고… 언제 천수각에 오를 수 있을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 구마모토 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고야 성과 더불어 일본의 3대 명성으로 불린다.

 

사이고 다카모리

그런데 이 난공불락의 성도 불탄 적이 있다. 앞에서 말한 사이고 다카모리가 일으킨 ‘세이난 전쟁(西南戰爭)’ 때였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한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향인 가고시마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사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에만 전념했는데, 사학교의 규모가 날로 커지고 사이고 다카모리를 중심으로 세력이 결집되자 당시 정부는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가고시마 현이 큰 걱정거리였다.

 

▲ 니요노 이시가키 엄청난 높이의 석벽 니요노 이시가키 등 구마모토 성은 가토 기요마사의 작품답게 성벽이 매우 가팔라 ‘쥐도 기어오를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결국 정부가 가고시마를 공격할 구실로 무기와 탄약을 오사카로 운반하라고 명하자 사학교 학생들이 앞장서서 가고시마의 군수 공장과 해군기지를 공격했고 1877년 2월 사이고 다카모리를 옹립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1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도쿄로 향하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3만으로 늘어난 병력으로 구마모토에서 정부군과 맞닥뜨려 6개월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구마모토 성을 포위했으나 끝내 함락하지 못했다. 이때 성의 천수각이 불타게 된다. 그런데 사이고 다카모리 군의 공격으로 불탄 것이 아니라 정부군의 장군이 군사들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스스로 불을 놓았다고 한다. 구마모토 성이 얼마나 난공불락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증명하는 대목이다. 그때 불탔던 천수각은 1959년 복원됐다.

 

▲ 천수각 천수각은 7층으로 세이난 전쟁 때 단 한 번 불탄 적이 있다.

 

결국 사이고 다카모리 군은 규슈 곳곳에서 정부군과 공방전을 벌였으나 패전을 거듭하자 1877년 9월 가고시마로 철수했다. 뒤쫓아 온 정부군에 최후의 보루였던 시로 산이 함락되자 사이고 다카모리는 9월 24일 자결했고 이로써 세이난 전쟁은 끝이 났다.

 

▲ 천수각 천수각은 7층으로 세이난 전쟁 때 단 한 번 불탄 적이 있다.

 

높고 가파른 성벽 니요노 이시가키 너머로 천수각이 우뚝 솟아 있다. 아찔한 마음을 다잡아 천수각으로 향했다. 다시 성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하는 수 없이 성벽을 돌아갔더니 땅에서 불쑥 솟은 천수각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천수각에 오르려면 이곳에서 혼마루 어전의 지하통로인 구라가리쓰로를 통과해야 한다. 철옹성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천수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 구마모토 성 입장권에 있는 그림으로 난공불락의 구마모토 성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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