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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멋진 풍광과 동굴 요새가 있는 제주 가마오름




경치에 웃고 아픔에 우는 제주 가마오름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전설적인 영화인이었던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여행자에게 뭇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좋은 풍광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부럽다고.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

 

어리석은 여행자의 시각에서 보면 여행지의 사람들은 단순히 글과 사진의 배경일 뿐이지만 진정한 여행을 하는 자는 그들의 삶이 기쁨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여행이라는 것은 멀리서 바라보기만하는 대상화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일체화의 과정인 것이다.

 동굴진지 입구

아름다움이 지극하면 그 속에 슬픔이 있고 슬픔이 지극하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여행자에게 있어 제주도는 그런 곳이다. 제주공항에서 정뜨르의 비극을, 산방산에서 알뜨르의 노역을, 송악산에서 동굴진지의 참담함을, 다랑쉬오름에서 양민학살을, 한라산에서 4․3의 참상을 떠올린다. 여행자에게 있어 제주도는 아름다움 속에 깊은 슬픔을 간직한 땅이다. 오늘의 여행지도 그러하다.

 

가마오름. 오름의 생김새가 가마솥을 엎어 놓은 모양과 같다 하여 가마오름이라고 불린다. 혹은 가메오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가마’는 ‘감’에서 나온 것이고 ‘감’은 신성하고 거룩하다는 뜻을 지닌 북방어로 ‘곰’ 계통의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가마오름은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동굴은 미로처럼 설계되어 있다.

해발 140여 미터의 낮은 봉우리지만 이곳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 멋진 경관을 볼 수 있다. 멀리 모슬봉과 산방산, 단산, 수월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오름을 오르기 위해서는 평화박물관을 거쳐야 한다.

 강제노역하는 장면

평화. 이 평온한 말이 쓰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평화롭지 않았거나 평화롭지 않다는 말이다. 오름에서 보는 멋진 풍광을 기대했음에도 마음만은 가볍지 않다.

 

오름으로 가는 길에 노랗게 익어가는 귤이 보인다. 열매가 달린 이듬해 여름에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하귤이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앞서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내밀어 앞을 보니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동굴 입구가 보였다. 이곳이 바로 일제시대 때 일본군이 주둔했던 지하요새인 동굴진지이다.

 사령관실로 추정되는 곳

이곳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단사령부가 주둔했던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진지땅굴이 있다. 일제는 제주도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이 진지땅굴을 팠다. 주민들은 산속 깊숙한 지하의 어둠 속에서 배고픔과 채찍, 학대를 받으며 오로지 삽과 곡괭이만으로 이 동굴을 만들어내었다.

 간부회의실로 추정되는 곳

지하요새는 완전히 미로처럼 설계되어 있다. 수십 개의 방이 있는 이 동굴은 전체 2km에 달하며 3층 구조의 미로형태이다. 현재 3백여 미터 정도 개방하고 있다. 출입구만 해도 33개이고 그중 17개는 하나의 통로로 이어져 있다.

 가마오름 정상에 오르면 제주 서남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땅굴 내부에는 사령관실로 추정되는 10평 남짓한 방과 회의실·숙소·의무실 등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용도의 공간이 들어서 있다.

 모슬봉과 가시악

태평양전쟁 당시 패색이 짙어가던 일제는 이곳 가마오름 뿐만 아니라 제주도 일대를 본토 사수의 최후 방어선으로 섬 전체를 요새화하였다. 이러한 흔적들이 지금도 제주도 곳곳에 있다.

 

어둡고 답답한 동굴을 나오니 상쾌한 제주의 바람이 불어온다. 정상에 올라 제주 일대를 내려다보며 아픈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오름을 내려오는 길 곳곳에서 동굴로 통하는 입구를 볼 수 있었고 B29를 격추시키기 위한 대공포진지도 눈에 보였다.

 

다시 초입에 있는 평화박물관에 들어갔다. 이영근관장의 설명과 더불어 영상을 감상하고 전시되어 있는 각종 자료들을 관람하였다. 이영근관장의 부친인 이성찬옹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에 징용되어 이곳 가마오름 땅굴 진지 내 군량미 수송 노역에 시달렸다.

 동굴로 통하는 입구가 오름 곳곳에 보인다.

이영근관장은 이러한 부친의 고통스런 과거를 전해 들으며 10여 년 전부터 땅굴 체험학습장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전시품 등 자료 확보에 동분서주해왔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자료가 3백여 점 이상이었다.

 B29를 격추시키기 위해 설치된 대공포진지 터

평화박물관이 있는 가마오름은 일제 만행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역사체험의 공간이면서도 오름 정상에 오르면 제주 서남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다. 평화박물관이 있는 가마오름은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 있는 봉우리이다

                                                                               이영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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