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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스마트폰으로 찍은 6일간의 나홀로여행



스마트폰으로 찍은 6일간의 나홀로여행

애초 이럴 일이 아니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황금연휴, 달력만 봐도 흐뭇해지는 5월이었다. 그 설렘에 몇 달 전부터 중국 윈난성 여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혼자서라도 기어이 가겠다는 거창한 포부까지 밝혔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1달 전 다시 우리 땅으로 눈길을 돌렸다. 선택한 곳은 가거도와 만재도, 태도 일대의 우리나라 서남해 섬들이었다.

충남 서천 월하성 전경

여행은 사람이다
이마저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일명 ‘달빛파’ 모임 때문이었다. 원래 이름은 ‘삼주회’였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은 적 없는, 스스로에게 중독되어 그렇게 불리는 모임이다. 세 사람의 건장한-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사내들의 모임이다. 사는 곳이 경기도 여주, 전라도 전주, 경상도 진주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두 술이 없으면 세상의 낙조차 모르는 이들이라 고을자가 아니라 술자가 제격이다. 한 사람은 문화유산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서 기록하는 글쟁이고, 한 사람은 부부화가인데 그림과 도자기에 미친 예인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집이 없다는 점쟁이의 말을 교리처럼 받들며 바람처럼 떠도는 여행자다.

여행자의 조카이자 예인 형님의 아들(그도 지금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이 5월 9일 군대를 갔다. 현빈만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입대소식은 형제들에게 비상소집을 명했다.

                                    전북 진안의 산더덕과 충남 서천 꽃게

우리들이 모인 곳은 충남 서천이었다. 동백숲으로 유명한 마량리에서 가까운 월하성이라는 작은 어촌이었다. 그곳에서 도자기 공방을 하는 분의 집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음식은 푸짐했다. 이곳 바다에서 갓 잡은 꽃게를 삶고 주꾸미를 데치고 광어를 회로 써느라 분주했다. 스님이 진안의 깊은 산중에서 캐온 산더덕은 깨끗이 씻어 날로 먹을 작정이었다. 그날 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는 달빛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서 ‘삼주회’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달빛파’로 바뀌었다.

원래 6일 동안의 섬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서천에서 1박을 하게 되어 5일로 줄어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목포로 떠나려하는데 누군가 해장술을 제안했다.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거나하게 취해 버렸다. 낮술에 취했으니 길을 떠나기는 어려울 터, 다시 달이 뜰 무렵 잠이 들었다.

다음날 무슨 일이 있어도 목포로 출발해야 했다. 군대 가는 조카를 환송하는 모임이었는데 주인공인 조카는 먼저 떠났고 객인 우리들만 남아 즐겼으니.... 여주로 가자는 사악한(?) 제안을 뿌리치고 차에 올랐다. 스님이 전주까지 태워주신다고 했다.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목포행 버스를 탔다. 이제 진짜 출발인가보다. 애초 하룻밤을 잘 계획이었는데 3일을 머물게 되었다. 당초 염두에 두었던 섬을 다 돌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여행은 결국 사람이니까. 저마다의 마음에 뱃길을 내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목포에 도착해서 곧장 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유달산을 올랐다. 3일 동안의 달빛놀음에 지쳐 있던 몸은 그날 초저녁에 쓰러졌다.

큰 배의 접안이 힘든 다물도에서는 어선이 나와 쾌속선의 손님과 짐을 실어 나른다.

쾌속선으로 4시간, 국토의 최서남단 가거도로
7일 아침 6시에 일어나 8시 가거도행 여객선을 탔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의 섬 가거도는 쾌속선으로 4시간 넘게 걸린다. 목포 내해를 빠져나온 쾌속선은 비금도, 도초도, 다물도, 흑산도, 상중태도, 하태도를 거쳐 12시 20분경 가거도에 도착했다. 큰 배의 접안이 힘든 다물도와 태도에서는 어선이 바다 가운데로 나와서 쾌속선의 손님과 짐을 실어 나른다.

국토의 최서남단 가거도 전경

중국의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가거도는 가히 살 만한 섬이었다. 기암괴석과 후박나무로 유명한 가거도는 1박2일 방송 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가거도이지만 여행자가 머문 이틀 내내 섬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선봉에서 안개를 피할 수 있었고, 섬등반도를 타고 넘는 구름의 장관을 보았다는 것이다. 짙은 안개에 묻힌 가거도항이 아주 잠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육지에서 가장 먼 뱃길 만재도

가거도에서 다시 육지에서 가장 먼 뱃길, 만재도로 갈 계획이었으나 3일 동안 배가 뜨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만재도는 다음을 기약했다. 만재도는 가거도에서 뱃길로 한 시간을 더 가야 한다. 다행히도 가거도에서 목포 나가는 뱃길에 안개 자욱한 만재도를 볼 수 있었다.

목포에서 광주로 가는 기차에서

다시 다섯 시간 뱃길을 달려 목포에 도착하니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딱히 갈 곳도 없고 내일이면 집에 돌아가야 해서 최대한 집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버스와 기차 시간을 알아보니 광주로 가야 했다. 목포역에서 6시 15분 기차를 탔다. 몇 년 만에 타본 기차에 마음은 들떠있었다. 함평, 나주를 거쳐 경전선의 종점인 광주 송정역에 도착하니 이미 한밤중이었다.

                                    송정 5일장의 특국밥과 국밥골목길

새끼보가 대체 뭐여?
아침에 일어나 송정 5일장으로 향했다. 장날이 아니어서 그런지 3, 8일 장인 송정 5일장은 한산했다. 여느 시장에도 그렇듯이 골목길에 국밥집이 많았다. 국밥집 문짝에는 낯선 이름의 국밥이 더러 있었다. 한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다 까무러치게 놀랐다. ‘장터국밥, 머리국밥, 내장국밥, 순대국밥, 콩나물국밥, 선지국밥, 암뽕국밥, 새끼보국밥, 특국밥, 살코기국밥.’ 그 엄청난 국밥 종류에 놀랐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새끼보국밥’이었다. 도대체 이게 뭘까? 생소한 이름이라 주인장에게 여쭈어보았다. 사투리로 이리저리 설명을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겨우 소통이 되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 나오는 태반과 탯줄 음식이었다. 특국밥을 주문하니 새끼보도 같이 나왔는데 그 맛은 내장보다 더 쫄깃한 맛이었다.

남원 시외버스터미널의 어느 여인숙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광주에서 다시 남원으로 갔다. 남원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딱히 갈 곳은 없었다. 지리산이나 가보자는 심사로 시골버스를 타기로 했다. 주천 가는 버스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달궁 가는 버스가 가장 빠른 시각에 있었다. 12시 15분 출발이었다.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24번 국도를 따라 달렸다. 시골버스의 차창으로 스쳐가는 지리산 산간마을은 고요했다. 여원치고개를 넘어 운봉, 인월을 지나 산내에서 내렸다. 애초 뱀사골 달궁까지 갈 생각이었으나 쏟아지는 빗줄기로 산내에서 내렸다. 산중의 논에도 곧 모내기를 할 모양이다. 조금 있으면 물을 댄 논들이 바빠질 것이다.

남원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지리산으로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비가 거세게 내리더니 이내 해가 뜬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장마를 연상시킨다. 비가 내리고 그치길 몇 차례, 여행자는 더 이상 걷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 몸을 실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6일 간의 나 홀로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경남 진주에서 충남 서천까지, 서천에서 전북 전주를 거쳐 전남 목포로, 목포에서 뱃길로 가거도, 다시 목포로 나와 기차로 광주까지, 광주에서 남원과 지리산을 거쳐 다시 진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6일 동안 4개 도와 1개 광역시를 지나간 셈이다. 여행 수단도 승용차, 버스, 배, 기차, 도보 등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6일 간의 여행기는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댄 지리산 산내의 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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