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하얀 연기의 유혹, 담배 이렇게 심는다




하얀 연기의 유혹, 담배는 이렇게 심는다.
-진주시 지수면 청담리의 담배 심는 풍경

어릴 적 담배에 대한 추억 하나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호기심으로 아버지 몰래 한두 대 훔쳐 피우다 혼났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시골 정자나무 아래나 사랑채에서 어른들이 담배 피우는 광경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마을 어르신은 대나무로 만든 긴 장죽담뱃대를 사용했다. 장죽은 권위와 연륜의 상징으로 아무나 쓸 수 없었다. 흰머리가 나지 않은 젊은 사람이 장죽으로 담배를 피우면 싹수가 노란 놈이라고 욕을 얻어먹곤 했다.


담뱃대와 함께 호주머니에 늘 가지고 다니던 것이 봉초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담뱃대에 넣어서 피울 수 있도록 잘게 썬 봉초를 넣고 다니며 장죽에서 연신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마실을 다니곤 했었다. 도시물을 제법 먹은 중년의 아저씨들은 호주머니에서 꺼낸 짧은 파이프곰방대를 입에 물고 멋을 부리곤 했다. 이제는 보기 힘든 그 시대의 풍경이었다.


한때 멋의 상징이었던 담배는 휴대하기 좋은 필터담배가 나오면서 멋보다는 실용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것이 금연운동이 확산되면서 담배는 더 이상 멋도, 추억도 아닌 거추장스럽고 끊어야 할 그 무언가로 변해 버렸다.


여행자가 담뱃잎을 처음 본 건 대학 1학년 때였다. 진주시 지수면 청담리 무등마을에 봉사활동을 나갔다가 담뱃잎을 처음으로 따게 되었다. 담뱃잎은 모내기 전에 딴다. 보리타작과 비슷한 시기에 담뱃잎을 따게 되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다. 유월 뙤약볕은 잎을 따느라 굽힌 등을 사정없이 태우고,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든다. 평생 담배농사를 지어온 마을주민이 땡볕에 아랑곳하지 않고 담뱃잎을 묵묵히 따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분명 도망갔을 것이다.


이번에 간 곳도 역시 진주에 있는 지수면 청담리였다. 마을주민 유영갑 씨의 안내로 담배 심는 광경을 찍을 수 있었다. 차를 세우고 담배밭으로 향했다. 고랑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줄로 늘어서서 담배모종을 심고 있었다.



밭으로 내려서니 벌써 인기척을 느꼈는지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럴 때는 먼저 인사를 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도리다. 몇 컷을 망원으로 찍고 난 후 주민들에게 다가갔다.

“뭐 한다고 찍어 샀는고. 방송국에서 왔소?”
매번 받는 질문이지만 늘 정성을 다해 설명을 한다.
“방송국은 아니고 책에 실을 겁니다.”
“아따, 그라모 신경을 바짝 써서 찍어 주소. 이왕이면 예쁘게.”
한 할머니의 넉살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힘들지는 않습니까?”
“와 안 힘들것소. 안 힘들다쿠모 거짓말이제. 허리가 끊어질 것 같소.”




이래저래 말을 주고받다가 카메라에 신경 쓰지 마시고 평소대로 일을 계속하라고 했다. 그래도 일 하는 중간 중간, 할머니들은 카메라를 힐긋힐긋 쳐다본다. 괜스레 일에 방해될까 싶어 망원렌즈로 바꾸고 멀찌감치 물러서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담배는 대개 봄이 본격적으로 오기 전에 파종을 해서 질이 좋고 부드러운 흙으로 덮는다. 싹이 나서 자라려면 25도 이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온상에서 파종을 하고 키운다. 3일 뒤쯤 잎이 4, 5매 정도 나면 화분 모양의 비닐포트에 옮겨 심는다. 그러다 이파리가 9, 10매 정도가 될 정도로 자라면 본포
本圃인 비닐로 덮은 밭이랑에 옮겨 심는다.


오늘은 비닐포트의 담배 모종을 본포로 옮겨 심는 과정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니 담배를 심는 방법이 간략하게 분업화되어 있었다. 세 사람이 삽 모양의 긴 장대에 달린 쇠붙이로 본포에 구멍을 내면 한 줄로 늘어선 일꾼들이 모종을 심는다. 상대적으로 구멍을 내는 빠른 작업에는 3명이, 모종을 심는 다소 느린 작업에는 6명이 배치되어 일을 하고 있었다.


담배가 점차 자라 꽃망울이 생기면 순자르기를 해주는데, 이는 담배가 잎을 수확하는 작물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기 위해 꽃에 양분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순을 자르고 잎이 약간 퇴색이 되어 한 줄기에 20여 장의 잎이 붙으면 그 붙은 위치에 따라 본엽, 상엽, 중엽, 하엽으로 구분하여 수확한다고 했다. 수확한 담배는 담배창에서 건조를 한다. 요즈음은 마을 단위의 공동건조장이 있지만 예전에는 담배를 재배하는 농가마다 대개 담배건조창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재배 수확한 담배는 KT&G에서 사들인다. 농민이 KT&G와 계약을 체결하고 난 후 담배를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엽이라고 한다.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설과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남초
南草, 왜초倭草, 서초西草 등의 담배 명칭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들어온 담배는 농민들이 자유로이 경작을 하다가 일제시대인 1921년에 전매제도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담배를 심는 농민의 수고로움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두 모습이 계속 오버랩 된다. 담배를 끊을 나의 모습과 아픈 허리를 굽히며 봄날을 힘들게 보내고 있는 농민의 모습. 담배 한 대를 물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김천령의 여행이야기에 공감하시면 구독+해 주세요
▒ 김천령의 지역별 여행지 보기  (http://blog.daum.net/jong5629) ▒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김천령의 풍경이 있는 한국기행]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