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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아빠, 이것만은 지켜줘. 제발....



 

아빠, 이것만은 지켜줘. 제발....


나에게 있어 손발톱을 깎는 것은 성가신 일이다. 손톱을 자주 깎지 않는 버릇 때문에 아내는 늘 타박이다. 아내의 매서운 잔소리가 있고 나서야 못 이긴 척하며 손톱을 깎는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했거늘....’ 중얼거리며 말이다.

 이날도 아내가 손톱을 보더니 깎으라고 하였다. 잔소리가 시작될까 두려워 손톱깎이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이리저리 경쾌하게 날아가는 나의 분신을 가끔 주워 담으며 깎고 있는데 딸애가 냉큼 다가온다.


“아빠, 손톱 깎고 있나? 손톱을 깎을 때는 화장지를 깔고 해야지.”


이 녀석, 일곱 살이 되고 난 후부터 매번 아빠를 가르칠 태세다. 두 여자 때문에 집안에서는 항상 내가 불리하다. 1대2. 이 숫자는 싸움에서 정말 불리하다. 특히 입으로 하는 싸움이라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나중에 닦으면 되잖아.”
나의 목소리는 올라갔지만 이미 주눅이 들어 있었다. 딸애의 잔소리가 이어질 것은 당연하지만 요즈음 잔소리가 많은 그녀가 미워 한마디라도 변명을 해야 속이 시원하였다. 이 변명이 엄청난 화를 자초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딸애는 
“아이 참, 아빠는 왜 그럴까.”
하며 화장지를 꺼내 와서 바닥에 깔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이미 바닥에서 울고 있는 나의 분신을 쓸어 담고 화장지 위에 나의 손발을 올리고 깎아야만 했다.

 

“아빠, 이것만은 지켜줘. 제발”

딸애가 자기 방에서 종이 한 장을 가져오며 툭 던진 말이었다. 테이블에 엎드려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였다. 발톱까지 다 깎고 나서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종이 한 장을 건넨다.


아빠가 지켜야 할 규칙이란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자고 한 얘기가 죽자는 꼴이 되었으니....



1. 손톱을 깎을 때 휴지를 깔기

2. 샤워를 할 때 문을 닫기

3. 간식이나 밥을 먹을 때 남기지 않기

 

딸애의 사설은 이어진다.
“아빠는 샤워할 때 문을 왜 안 닫고 하지. 그리고 가끔 아침밥을 왜 남기지?” “그래 앞으로는 샤워할 때 문 닫고 하지. 사실 요즈음 몸매도 서서히 망가지고 있으니.... 건데 3번은 너도 마찬가지잖아”
고 항변을 했다.


“나는 아무거나 잘 먹거든요♪♬.”
딸애는 노래하듯 대답을 한다. 옆에서 히죽히죽 웃으며 지켜만 보던 아내도 딸애의 편을 들기 시작한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이렇게 되면 싸움은 유치해진다. 제일 싫어하는 1대2. 역공을 펼칠 뭔가가 필요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다.
“건데 지아는 왜 컴퓨터를 오래 할까. 저번에 유치원에서 시간 정해 놓고 하기로 약속해놓고....”
이쯤 되면 대역전이다.


잠시 멈칫하더니 딸애가
“그럼, 규칙에 넣으면 되잖아요.”
하더니 재빨리 종이에 적는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규칙이 생겼다.


4. 컴퓨터를 할 때 시간을 정하기


옆에 있던 아내가 결국 한마디 한다.

“청소도 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

딸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적기 시작한다.


5. 대청소를 다 같이하기


 

결국 다섯 가지는 우리 가족의 규칙이 되어버렸다. 아이는 냉장고에 규칙을 붙이고 큰소리로 다시 한 번 읽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