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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풍광에 놀라고 멧돼지에 혼쭐난 와현봉수대


 

풍광에 놀라고 멧돼지에 혼쭐난 와현봉수대

 - 대마도가 보이는 봉수대에서 더 놀란 이유, 거제 와현 봉수대

 

거제도 해안도로는 곳곳이 비경의 연속이다. 남해안의 섬들이 대개 그러하지만 거제만큼 깊고 아름다운 비경들이 이어지는 곳은 드물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해금강, 여차 홍포, 신선대, 바람의 언덕 등 이루 다 말하기조차 힘들다.

 와현봉수대. 해발 309m의 망산 정상에 있다.

그중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거제의 마지막 비경이 있다. 바로 일운면 와현리에 있는 망산 일대이다. 공곶이로 최근에 알려져 있는 망산은 해발 309m의 낮은 산이지만 바다에 접해 있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와현봉수대는 통제구역 안에 있어 고라니, 멧돼지 등의 야생동물 천국인 원시림이다.

지세포를 지나 누우랫재(와현고개)를 오르자마자 왼쪽으로 포장된 산길을 올라가면 망산 입구이다. 서이말 등대로 가는 이 길은 국가보안지역이다. 석유공사가 이곳에 있어 통제소에서 검문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통제소를 지나면 깊은 수림으로 가득 찬 원시림이 펼쳐진다. 겨울이라 잎이 떨어진 활엽수뿐이지만 여름이면 망산은 울창한 숲을 이룬다. 인적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적막한 산길이 시작된다.

 봉수대에서는 동백섬 지심도가 지척이고 멀리 부산 일대까지 한눈에 보인다.

얼마간 가니 와현봉수대 안내판이 나온다. 벼랑 끝에 있는 서이말등대에 먼저 잠시 들린 후 홀로 봉수대 가는 산길에 올랐다. 봉수대까지는 400여 미터 그다지 멀지 않은 길이었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왠지 모를 오싹함과 숲 어디선가 들리는 짐승 소리 때문이었다. 이 예상은 나중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나에게 엄청난 일로 다가왔다.

 지심도의 폐교와 동백숲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 무너진 돌무더기가 보였다. 이곳이 망산 꼭대기에 있는 와현 봉수대이다. 잎을 떨어뜨린 나무 한 그루와 무너진 돌무더기가 을씨년스럽게 여겨지는 것도 잠시, 정상에 오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지심도의 낚시꾼들

훌쩍 뛰어 오르면 건널 것 같은 지심도가 지척이고 멀리 부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여행자를 놀라게 한 건 육안으로 대마도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날 날씨는 더없이 쾌청하였다.

 지심도의 마끝

대마도 한국전망대에서도 맑은 날이면 부산시와 남해안 일대를 볼 수 있다. 멀리 공사 중인 거가대교도 보이고 서쪽으로는 남녀도, 북여도, 홍도, 외도, 내도, 해금강, 대소병대도, 매물도 등의 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멀리 수평선 너머 대마도가 어렴풋이 보인다.

와현봉수대는 풍광도 좋지만 그 역사적 의미도 깊다. 조선시대 수군의 주둔지였던 인근의 지세포진에 속한 이 봉수대는 산의 꼭대기를 다듬고 원형의 봉수대를 만들었다.


와현봉수대는 남쪽 바다를 직접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중요한 시설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으로 지세포 봉수대, 옥년봉 봉수대, 강망산봉수대로 이어진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8월 14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43호로 지정되었다.

 대마도 와타츠미신사

섬풍경에 빠져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왠지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고라니가 자주 출몰한다는 안내문은 보았지만 울음소리가 멧돼지를 닮았다.

 봉수대에서 본 외도

어둡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했다. 조심조심 산을 내려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얼어 버렸다. 지척에 멧돼지 대여섯 마리가 있는 게 아닌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의 머리는 순간 하얗게 되어버렸다.

             천연 동백숲과 수많은 아열대식물이 장관인 외도 풍경

뛰어 도망을 갈까, 아니면 나무에 오를까 정신이 없는 와중에 멧돼지 일행이 먼저 뛰어 도망을 가기 시작하였다. 사진을 찍어야 된다는 생각은 계속 들었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내도는 그 모양이 외도를 향해 떠가는 거북이를 닮아 거북섬으로도 불린다. 앞에서부터 내도-외도-해금강

불과 몇 초 사이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도 전에 다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멧돼지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심조심 걷다가 멧돼지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고 여겼을 때 냅다 뛰기 시작하였다. 이 행동이 얼마나 무모했던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공곶이에서 본 내도

빛의 속도로 100여 미터를 달리니 차가 보였다. 부리나케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은 다음에야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숲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였다. 온몸이 땀범벅 되었고 옷도 흥건히 젖어 있었다. 무슨 일이냐는 아내와 아이의 물음에도 아무 답을 할 수 없었다.

멀리 한창 공사 중인 거가대교가 보인다.

잠시 진정을 하고 난 후 통제소에 들렀다. 멧돼지를 보았다고 하니 인상 좋은 직원은 웃으면서 여유 있게 말하였다. “아, 여기요. 멧돼지가 바글바글 합니다. 온산이 멧돼지 소굴입니다.” 평소 봉수대를 가는 이들도 거의 없을뿐더러 멧돼지는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위험하지 않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군요.

 해금강과 여차 홍포해안길, 망산, 대소병대도가 보인다.

그러면서 멧돼지를 만났을 경우 대처 방법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산행 시 멧돼지를 만났을 경우

1. 절대 등을 보이며 뛰거나 소리 지르지 말 것.

2.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것.

3. 우산이 있을 경우 펼칠 것(멧돼지가 자기보다 큰 줄 알고 공격을 안 한답니다.)

4. 여의치 않을 경우 바위틈에 숨거나 나무에 올라 피할 것

등이었습니다. 

 명승 제2호 해금강

저와 같이 뛰는 행위는 화를 자초하는 아주 위험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원에게 통제된 지역이여서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도 멧돼지 출현 지역임을 알림과 동시에 멧돼지를 만났을 경우 대처 요령에 대한 안내문을 설치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날 평소 같으면 여행자가 가는 곳은 모두 따라가려고 하던 여섯 살 아이는 차에 있었습니다. 이곳을 오기 전에 너무 많이 걸은 탓에 차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같이 갔다면 어쨌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였습니다.

여차 홍포  해안길에서 본 매물도와 다도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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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풍경이 있는 한국기행]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