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실에서 개를 키우다니.......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의 모교를 찾았습니다. 집 가까이 있는데도 자주 찾질 않았었고 간다하더라도 운동장만 둘러보고 오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큰 마음먹고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찬찬히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공부하던 교실이며 선생님들이 머물던 사택 등 구석구석 돌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폐교가 되어 너무나 낡아버린 모교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였습니다. 같이 간 아이들은 귀신이 나올 것 같다며 집으로 돌아가기를 종용하였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찾는 모교라 아이들을 달래며 구석구석 돌아보았습니다. 찢겨진 칠판, 움푹 꺼진 바닥, 썩고 있는 마루, 녹슨 창, 텃밭이 되어버린 운동장. 마음 한구석이 짠하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녔을까요. 교무실 옆 건물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디서 냄새가 난다고 하였습니다. 냄새가 나는 건물로 다가가니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어미 개 한 마리와 강아지 몇 마리가 나를 보고 한꺼번에 짖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놀란 나머지 뒤로 물러섰습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교실 바닥에 깔려 있던 나무로 된 마루는 다 걷어 내어져 있었고 흙이 드러난 바닥에 개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복도에는 개 사료로 보이는 자루가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개에게 먹이를 주기 위한 먹이통도 두 개나 버젓이 있는 걸로 봐서 잠시 개를 보관하기보다는 이곳에서 개를 키운 지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한때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던 학교에서, 아무리 폐교가 된 학교일지라도 그것도 교실 안에서 개를 키우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 문을 여니 개가 한꺼번에 사납게 짖으며 달려와서 아이들이 염려되어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폐교를 임차한 이가 살고 있는 건물로 가서 항의를 하려고 했으나 추석날이라서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학교를 개인에게 임대한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교실에서 개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개가 있는 교실이 앞으로는 화단 위에 높이 있는 건물인데다 뒤쪽으로는 접근하기도 힘든 후미진 곳에 있어 사람이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 개가 짖지 않으니 당연히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실에 개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마을사람들은 흥분하였습니다. 아무리 폐교가 된 학교이지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폐교를 임차한 사람은 인근 면에 산다고 마을사람들이 말하더군요. 자신이 졸업하지 않은 모교임에는 분명하였습니다. 자신이 나온 모교였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요. 시골에는 노인 분들만 있어 아는 안면에 학교를 빌린 이에게 궂은 말 하기를 꺼렸습니다. 교육청에 항의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추석연휴라 어쩔 수 없이 연휴가 끝난 후 제가 총대를 메고 전화를 하기로 정리하였습니다. 블로그에 먼저 글을 올릴까하다 잠시 냉정을 찾고 이리저리 자료를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경남 합천군 가회면 도탄리 도성초등학교. 폐교가 된 모교의 주소입니다. 합천군 교육청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습니다.
“폐교명-도성초등학교, 폐교년도-1994년, 소재지-가회면 도탄리 1078, 대부기간-2006.10.23~2009.10.22, 대부목적-야생화체험학습장”
분명히 ‘야생화체험학습장’으로 나와 있는데, 야생화는 한 포기도 없을뿐더러 목적과 실제 용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늘 교육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담당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며 즉각 현장 방문을 하여 시정 조치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여름내 학교 나무그늘 아래에 매일 모여 담소를 나누던 마을 주민들도 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니 수긍은 갔으나 한번쯤 현장을 방문하여 건물 상태를 꼼꼼히 확인했다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다가오는 10월 22일에 지금 학교를 임차하여 사용하고 있는 이와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하니 본인이 재계약을 원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계약기간을 연장해주기로 이미 통보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번 일의 결과를 동문회에서도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시정 결과에 대해 저에게 알려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교육청 담당자는 거듭 사과를 하며 당장 현장 조사 후 즉각 저에게 시정, 조치사항을 알려주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저는 블로그에 이 문제에 대한 글을 올릴 것이라고 말하였으며 이후 조치사항 등 결과에 대해서도 공개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다만, 교육청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먼저 올리기보다는 사전에 교육청 담당자의 해명을 듣고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올리는 것이 감정적인 글보다 합리적이라 생각하여 이제야 글을 올린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저도 며칠 동안의 생각 끝에 인터넷에 대안 없이 올리는 고발성 위주의 글보다는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하여 이성적으로 올려 문제가 좋게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이후에도 계속 이 문제에 대해 감시할 것이며 조치사항 등 결과에 대한 글도 올리겠다고 통보하였습니다.
씁쓸합니다. 분노가 너무 커 감정이 앞설까 며칠 동안 생각 끝에 올렸습니다. 폐교가 된 것도 마음 아프고 쓰러져가는 모교 건물을 보는 것만 하여도 속이 타는데, 한때 인재를 양성했던 교실 바닥을 걷어내고 개를 키울 수 있는지.......아직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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