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폐교된 모교를 25년 만에 가보니.......


 

폐교된 모교를 25년 만에 가보니.......


 추석 전날 아빠의 초등학교를 가보고 싶다는 딸아이와 함께 조카를 데리고 동네에 있는 모교를 찾았습니다. 워낙 산골인지라 폐교가 된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고향집 바로 뒤에 있는데도 졸업 후 찾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가뭄에 콩 나듯 가끔 들리기는 했는데 운동장 주위만 배회하고 정작 교실 안으로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작대기 하나씩 들고 잰걸음으로 앞서 갑니다. 오는 길에 밭에 있는 밤과 감도 딸 것이라고 했거든요. 딸아이는 자기 몸보다 큰 광주리를 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명랑하게 걸어갑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놀랐습니다. 고운 모래가 깔려 있던 예전의 운동장은 간 데 없고 잡초만 무성하였습니다. 운동장의 절반 이상은 누군가에 의해 텃밭으로 일구어져 있었습니다. 변하지 않은 건 교훈이었던 ‘정직, 질서, 탐구’라 적힌 글자만이 오랜 세월에 희미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외지에 거주하던 교감선생님 가족들이 생활하던 사택으로 먼저 향했습니다. 이 건물은 어릴 적만 하여도 동네 최고의 집이었습니다. 친구 부친이 교감선생님이었던 관계로 집안을 구경할 수 있었지요. 동네 최고의 집이 이젠 퇴락하여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사택을 지나니 문짝마저 달아난 푸세식 화장실과 잡초가 무성한 화단이 뭉개져 있었습니다. 그중 나의 눈길을 끈 건 녹슨 난로였습니다. 겨울에는 난로의 연료였던 석탄부스러기가 떨어지면 학교 소유였던 뒷산에 땔감을 구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겨울철 더운 점심밥을 먹기 위해 양철도시락을 층층 쌓아 놓았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저는 학교 앞에 집이 있어 점심시간이면 집에 가서 먹고 오곤 했는데, 도시락 사오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 어머니께 도시락 싸달라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모교의 명물은 우물이었습니다. 건물 뒤 대나무가 무성한 곳에 자리한 우물은 시원함 그 자체였습니다. 우물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깊었습니다. 행여나 빠질 세라 조심스럽게 두레박을 던져 물을 긷던 추억이 담긴 곳입니다. 그 우물도 이미 망가져 버렸습니다.


 

 너무 망가져 교실 안까지 들어갈 수 없는 뒤쪽 건물은 포기하고 화단 옆길을 따라 본관 건물로 향했습니다. 앞서 가던 아이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무언가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아빠, 저게 뭐야?” “어, 어디 보자. 아, 저거 말이야. 종이야. 땡땡 치던 종이 아니고 전기로 종소리를 내는 거야.” 아이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녹슨 상태였지만 종이 있는 것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잠시 수업 시작하는 종이 울리는 듯 착각에 빠져들었습니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풀무더기 속에 무너질 듯한 스레트 집 한 채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외지에 살던 여선생님들이 주중에 살던 곳이었습니다. 봄에는 미나리, 여름이면 감자, 가을엔 고구마, 겨울에는 홍시와 밤을 바구니에 담아 어머니와 저는 선생님의 고마움에 보답하러 찾곤 하였습니다.


 

 교실의 골마루에는 먼지가 수북하였습니다. 여섯 살 딸아이는 무섭다고 말하더군요. 교실 안을 들여다보니 마룻바닥은 이미 내려앉은 곳이 태반이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것도 금방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신발장도 제 구실을 못한지 오래된 모양입니다. 번호표도 오랜 세월에 그 흔적만 겨우 남아 있었습니다.


 
 교무실은 그나마 상태가 좋았습니다. ‘198□년’에 시간은 멈추어 버렸습니다. 선생님들의 웃음소리와 고함소리가 귀에서 맴도는 듯합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기억에 안 떠오르고 엄청 예뻤던 두 여선생님만 문득 생각났습니다. ㅠㅠ

 

 초등학교 1학년 때 수업을 받았던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의자와 책상, 칠판 등 무엇 하나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의자를 보더니 “이거 아빠 의자 아니야?”라고 물었습니다. ‘허허’ 웃으며 아니라고 넘겨 버렸지만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휑한 교실이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색이 바래 버린 창으로 보는 교실 바깥 풍경은 쓸쓸합니다. 밝은 교실 밖과는 달리 안은 어둡습니다. 유년의 추억도 깊은 어둠에 갇혀 버렸습니다. 오래된 난로 배기구만이 바깥세상과 통하고 있었습니다.


 

 교실 건물은 층층 쌓은 화단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대개의 오래된 초등학교가 그러하듯 이곳에도 ‘반공방첩’의 상징이었던 이승복 동상이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을 닫은 학교처럼 암울한 시대의 유산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하고 있습니다.


 

 오직 변함없는 건 코스모스와 꽃들이었습니다. 방과 후나 방학이면 화단의 꽃들과 나무들을 가꾸느라 잡초를 뽑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폐교의 쓸쓸함에 가을이 깊어감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처로도 이용되는 문을 닫은 모교에서 저는 경악할 만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후에 포스팅하겠습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