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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설거지 풀코스 완주한 여섯 살 딸, 만세 부르다.




 

처음 설거지한 여섯 살 딸, 만세 부르다.



 매주 금요일은 아내가 한 시간쯤 늦게 퇴근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유치원을 마치고 처갓집에 가있는 여섯 살 딸아이를 데리고 먼저 집에 와 있습니다. 집에 와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해놓으면 아내는 집에 도착합니다.




 
 사실 맞벌이라 외식을 하는 일이 잦은 편입니다. 아내는 금요일이면 늦게 퇴근을 하여 아이가 있는 처갓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곤 했지요. 저는 물론 약속을 잡거나 혼자 식사를 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날씨가 선선해지고 딱히 약속이라도 없는 날이면 혼자 밥 먹는 것도 일이라 아내와 같이 밥을 먹으려 했던 것이 불미한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추어 밥과 설거지를 해놓아야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었지요.



"지아야, 설거지 할래." 나의 한마디에 컴퓨터에 머리가 들어가 있던 딸아이가 "아싸"하며 싱크대로 곧장 달려옵니다. 내심 딸아이가 설거지를 도와주기보다는 귀차니즘에 빠진 나의 지루한 설거지에 조금의 활력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아빠, 오늘은 나 혼자 설거지 하면 안 돼." 두어 번 아빠의 설거지를 돕던 아이가 오늘은 혼자 설거지를 하고 싶다고 하는군요. “혼자하면 힘들걸. 지아는 손에 힘이 없어 그릇을 깨끗이 닦을 수도 없잖아.” 순간 아이는 입을 불쑥 내밀더니 서재에서 의자 하나를 가지고 와서 냉큼 싱크대로 다가섰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건네었습니다. 그릇을 닦기 시작하더니 다 닦은 그릇을 들고 “아빠, 이거 어디 놓아야 돼.” “어, 이리 줘” “아니, 말만 해주면 되는데.”해서 그릇을 놓을 위치만 말해 주었습니다.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취사를 누르고 나니 할 일이 없어 “지아야, 아빠가 도와줄게.” “아니, 나 혼자 할 거야.” 사실 그릇이 깨끗할까라는 걱정도 있어 살짝 그릇을 보니 생각과는 달리 깨끗하였습니다. “아빠는 뭐하지.” “음식 만들면 되잖아.” “응, 아빠는 할 줄 모르는데......” 몇 주 전에 아내가 늦게 와서 대학 때 자취하면서 자주 먹었던 참치김치찌개를 끊인 적이 있었습니다. 나름 파도 썰어 넣고 색깔도 잘 내었습니다. 아내는 맛있다고 하였지만 숟가락은 몇 번을 오간 후 멈추어 버렸습니다. 소심한 남자. 그 뒤로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그럼 우리 지아 사진 찍어 줄까.” “응, 건데, 사진만 찍고 컴퓨터에는 올리지 마.” 아이도 저를 닮아서인지 사진 찍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아이는 설거지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수세미로 그릇을 다 닦은 후 아이는 그릇을 헹구려고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아빠가 하겠다고 했다가 아이의 기분만 망쳤습니다. 씻은 그릇과 수저를 놓을 위치만 말해 달라고 하더군요. 몰래 흘깃흘깃 그릇 상태를 확인하고 씻은 그릇을 놓을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었습니다. 물을 틀어 놓고 설거지를 하는지라 그러지 말라고 나름 잔소리도하며 말입니다. 아이는 생각보다 차분히 그릇을 헹구고 제자리에 그릇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마지막에는 싱크대 주위도 닦더군요. 설거지를 다한 아이는 저도 기분이 좋은 지 만세를 불렀습니다.



 

 마지막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내가 불쑥 들어왔습니다. “지아야, 뭐해, 설거지하고 있어?” “어, 엄마 설거지 다했다. 내가.” 아이는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순간 아내는 나를 쬐려보더니“어이구, 어이구. 애한테 설거지 시켜놓고 자기는 사진이나 찍고 있나. 한량은 어쩔 수 없어.” 아, 이게 아닌데. 아동학대의 현장을 들킨 것처럼 변명도 못하고 카메라만 든 채 뻘쭘하게 서 있었습니다. “엄마, 내가 한다 했는데.” 아이의 그 말이 어찌나 고맙든지 나는 아이에게 윙크를 날리고 아내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하며 구구절절이 변명을 하였습니다. 아내도 그제야 “어이구, 다들 수고했네.”하며 칭찬을 하더군요. 헤헤 웃으며 아이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셋이서 맛난 저녁을 먹었습니다.


 

 가끔은 생각해봅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까지 미리 예단하여 아이가 혼자 설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랑이 때로는 지나쳐 과잉보호가 되는 것은 아닌지. 앞에서 끌어주기보다는 뒤에서 지켜봐주고 지칠 때 가끔 돌아와 기댈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의 노릇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