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서 즐긴 여름 꽃 여행
퇴근길에 카메라를 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장마가 지독하여 해를 볼 수 있는 날들이 많지 않습니다. 멀리 여행을 떠나기에도 힘이 드는 날들입니다.
어쩌면 꼭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애초 지구라는 별에 여행 온 여행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고 있는 집은 한 순간 머물 베이스캠프에 불과할 뿐이고 직장과 우리가 다니는 곳들은 제2, 제3의 캠프일 뿐입니다. 상황에 따라 그 때 그 때 머물 곳을 옮기는 것에 불과한 것이겠죠. 우리가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 잠시 갑갑한 캠프를 떠나 바람을 쐬는 나들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겠지요.
가좌천에 들어섰습니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풍경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구불구불 이어진 산책로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자귀나무는 벌써 연분홍빛의 꽃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얼굴만한 접시꽃도 긴 장마를 잘 이겨내고 활짝 웃었습니다. 연인들이 핑크빛 사랑을 속삭이며 지나갑니다. 붉은 배롱나무도 꽃을 피워 여름을 불태울 준비를 합니다. 원추리는 무리지어 피어 있습니다. 요즈음 공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이 이 원추리와 자주색의 비비추입니다. 화려한 듯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꽃들입니다.
바람이 붑니다. 꽃을 찍기에는 힘든 날입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겨우 꽃이 사진기로 들어왔습니다.
가끔은 이런 여행이 좋습니다.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내가 평소에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여행입니다.
기차가 지나갑니다. 멋있는 여객열차가 아닌 투박한 화물열차였습니다. 길고 지루한 장마가 끝나간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장마중이여서 그런지 온 몸이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다고,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지나쳤던 풍경들이 오늘 새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던 어머니와 아이가 정류장을 떠났습니다. 나도 여행지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
'이야기가 있는 여행 > 또 하나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영여객선터미널, 왜 이러나? (8) | 2009.08.31 |
---|---|
여섯 살 딸의 문자, 아빠에겐 재앙 (115) | 2009.08.21 |
고속도로에서 구름을 담다. (15) | 2009.08.19 |
국가명승지 명옥헌을 망치는 사진가들과 일부 관광객들 (19) | 2009.08.13 |
신비의 바위꽃 '석화'를 보셨나요? (7) | 2009.07.29 |
두륜산 대흥사에서 놓치기 쉬운 거대한 와불 (19) | 2009.07.09 |
더우시죠? 저는 낮잠 즐기는 행복한 개랍니다. (14) | 2009.06.19 |
이름없는 한 국민이 남긴 추모글 (6) | 2009.06.15 |
소나무에서 뽕나무가 자란다? (3) | 2009.06.14 |
노건평씨 호화 골프연습장 직접 가보니 (373) | 2009.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