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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국가명승지 명옥헌을 망치는 사진가들과 일부 관광객들

 

 

국가명승지, 명옥헌을 망치는 사진가들과 일부 관광객들

마을 입구의 주차장에 내려 걸어가면 이런 수백년된 고목들도 만날 수 있다. 

 전남 담양군 명옥헌원림. 소쇄원의 명성에 가려 덜 알려진 이곳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는 이들만 찾는 한적한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방문객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난 6월 국가명승지로 지정되면서 소쇄원 못지않은 관광 명소가 되어 버렸다. 7월 말부터 만개한 배롱나무꽃(백일홍)도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데 한 몫하고 있다. 제법 번듯한 주차장과 화장실이 후산마을 입구에 만들어졌다. 여행자가 이곳을 찾은 것은 지난 8월 8일 토요일이었다. 명옥헌의 호젓한 분위기가 좋아 거의 매년 찾다시피 하였지만 백일홍이 만발한 명옥헌의 선계를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아쉬움에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찾은 명옥헌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백일홍이 만발한 명옥헌원림은 최근 방문객들이 급증하였다. 사진 아래로 주위 경관을 망치는 주차된 차 지붕이 보인다.

※ 장면 1-어설픈 사진에 빠져 어미아비도 몰라보다
 
 “할머니, 거기 좀 나와 주시겠어요. 할머니 땜에 사진을 못 찍겠어요.” 서울 말투가 분명한 짜증 섞인 목소리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 봤더니 할머니 한 분이 배롱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히며 쉬고 있었다. 고함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무안한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순간 화가 나서 한 마디 하려다 억센 경상도 말투인 내가 뭐라 하면 오늘같이 습하고 더운 날 큰 싸움이 날까 싶어 꾹 참았다. 예전 성미 같으면 혼쭐을 내었을 터인데......

  진정한 사진가(?)라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아니 할머니의 표정과 주위 배경을 보고 차라리 할머니가 좋은 모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풍경이나 여행사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크다. 앵글에 사람을 어떻게 위치시키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정중하게 비켜줄 것을 부탁하면 그만이다. 안된다고 하면 무조건 기다려라. 그곳은 당신이 오기 전부터 할머니가 휴식을 취하던 곳이니 말이다.

 명옥헌은 요즈음 사진 찍는 이들이 북새통이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사진가들이 명옥헌의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

※ 장면 2-사진에 ‘사’자도 모르면서 작품 운운하다 

 “할아버지 좀, 비키세요. 사진을 찍지도 않으면서 거기 계속 서 있으면 어떡합니까. 빨리 찍으시던지, 아니면 비키세요.” 이런 우라질 인간을 봤나. 명옥헌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원림 전체가 나오는 마지막 사진을 찍기 위해서 나는 연못 둑길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도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삼각대에 장착하고 순간 포착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선 것은 10여 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소리치는 인간은 금방 막 도착하여 자기 나름 포인트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할아버지 빨리 비키세요. 거기가 포인트데, 혼자 독차지하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웃긴 소리하고 자빠졌네. 스스로 사진에 ‘사’자도 모름을 인정하였다. 거기가 포인트라고...... 거기는 사진이 평면적으로 나오는 곳이야. 전체 전경은 좋을지 몰라도 이 양반아, 사실 전경 포인트는 건너 편 언덕배기라네. 이번에도 할아버지는 말없이 카메라와 삼각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자리를 옮기신다. 손자뻘 되는 이와 무슨 말을 섞고 싶어 시겠는가. 

 내가 명옥헌을 찾아 둘러 본 시간은 오후 2~4시 사이였다. 이 두 인간, 카메라 장비는 좋았다. 그러나 이 두 장면으로 나는 그들이 초짜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여행 글을 쓰기 위해 사진을 찍기 때문에 시간대와 빛 때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사진 한 장을 건지려고 애쓰는 이들은 내가 간 이 시간대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게다가 이날은 습한 날씨에다 빛까지 거칠어 최악의 날이었다. 그런데도 사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빛에 대한 인식에는 무지하고 어쭙잖은 포인트만 운운하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그리고 풍경 사진을 자주 찍다 보니 사진 찍는 이의 선 자리만 보아도 그가 그리는 구도와 사진 수준을 안다. 적어도 풍경 사진에서는 말이다. 이제 갓 입문했는지, 몇 년을 해도 기본기도 채워지지 않아 짜증이 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 자세와 정신 수양 먼저 하지 않는 이상 사진은 계속 답보 상태일 것이다. 한 가지 목표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들이 오직 이들에게만 해당하겠는가. 그들도 어찌 보면 이 사회가 만든 인간 유형 중의 하나, 즉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모든 예술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예의”에서 시작되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의”에서 끝이 난다.



※ 장면 3- 국가명승지가 너희 집 안방이냐. 예끼!!!!!!!!
 

 백일홍 꽃길 아래로 정자에 이르니 정자 위에는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무릇 정자는 바라보는 맛도 좋지만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맛이 더 그윽한 법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지으니 말이다. 정자 위에 올라서니 하필 마루 가운데에 큰 大자로 뻗어 있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가운데에 방이 있는 구조여서 그 사람을 넘지 않고서는 정자 위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 사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옆에 앉아 있는 여인도 개의치 않고 모자로 부채질을 하고 있다. 이 남자 많이 피곤해서였을까. 아님 정자에 누워 옛 선인들의 풍류를 즐기고 싶어서였을까. 정자 위에 빼곡한 사람들을 뒤로 하고 붉은 꽃에 둘러싸인 정자를 전면에서 찍으려고 하는데 이 남자 이번엔 다리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1시간 뒤에 명옥헌을 빠져 나올 때까지 이 남자 마루에 누워 있었다. 자기 집 안방처럼...... 대개 자기 집이라 하더라도 손님들이 찾아오면 누워 있기는 힘든데. 이 남자 간이 큰 모양이다.

 지난 방문 때 인근의 환벽당 정자 위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일행들을 본 적도 있다. 문화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정자일수록 잠시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정자에 올라 풍광을 즐길 수 있을 뿐더러 옛 선인들의 정취도 직접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 장면 4- 가만히 있는 나무는 왜 흔들어.

 간혹 배롱나무 가지를 흔드는 사진가들이 있다. 사진 찍는 이들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을 사진에 담고 싶은 욕심에 이런 행동을 한다. 바람이 부는 봄이나 가을에는 그나마 낙엽이나 떨어지는 꽃잎을 찍기 쉽지만 바람이 없는 여름날이다 보니 욕심이 앞서 손으로 가지를 흔든다. 명옥헌의 나무 일부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그런데 당신마저 그래서 되겠는가. 마음에 담을 줄 모르는 이가 어찌 사진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설사 순간 포착을 잘 했다손 치더라도 당신은 진정성이나 혼이 담긴 사진은 끝내 찍지 못할 것이다.


※ 장면 5- 걷기 싫으면 발에다 차라리 바퀴를 달아라.


 명옥헌에서 나오는데 차들이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온다. 마을 입구에 분명 넓은 주차장이 있음에도 마을의 좁은 골목길은 드나드는 차들로 북새통이 되었다. 차 두 대가 비킬 공간이 나오지 않으니 민가까지 차가 들어가 길을 비킨다. 명옥헌 바로 앞에는 기껏해야 차 5대 정도 세울 공간 밖에 없다. 그럼에도 차는 꾸역꾸역 들어온다. 새로 만들어진 주차장에서 명옥헌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0분(300m)만 하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처음 들어올 때 ‘차량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분명 입구에 있었는데, 나올 때 보니 누군가 치웠는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명옥헌 바로 앞의 간이 주차장은 이제 없애고 그 땅을 원림의 일부로 가꾸어야 한다. 예전에는 방문객이 거의 없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가득 찬 차로 인해 전망도 망칠뿐더러 방문자들이 많아 마을 사람들에게도 심심찮은 피해를 준다.


 

마을 입구에 번듯한 주차장이 있음에도 조금이라도 덜 걷기 위해 비좁은 골목길에서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 차량들

명옥헌 가는 길에 버려진 쓰레기들. 길 옆에 있어 아니 볼 수 없다. 국가명승지인만큼  대책이 필요하다.

※ 장면 6-쓰레기 가득한 방으로 손님을 안내하다 

 명옥헌이 지난 6월 국가명승지로 지정 예고되었음에도 마을 곳곳에는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하다. 담양군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나 국가명승지가 되면 명옥헌 원림 자체만 염두에 둘 것이 아니라 주차장에서 원림까지 방문객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환경 미화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마을에 쓰레기 소각장을 만들어 주거나 쓰레기를 버릴 만한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외국인이 보면 무엇이라 하겠는가. 그냥 관광지도 아닌 국가명승지에 대한 기대 심리가 아주 작은 것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국가명승지는 우리나라의 얼굴이다.


 

마을 입구의 주차장. 사진에 나온 것보다 훨씬 넓다.
그럼에도 마을 안까지 차를 갖고 가는 이들이 있어 마을길은 엉망이 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