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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단돈 3만원에 묵었던 소박한 민박집

단돈 3만원에 묵었던 소박한 민박집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섬여행은 대부분 민박집에서 잠을 청하건만 가족여행은 그렇지 않다. 콘도나 여의치 않으면 펜션을 주로 이용한다. 오대산에 가는 날,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한밤중이다. 딱히 갈 곳도 없어 망설이고 있을 때 아주머니 한 분이 민박을 권유한다.


숙박비는 3만원이라고 하였다. 나 혼자 자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아내와 딸아이 때문에 망설이고 있으니 아내가 일단 한 번 방을 보자고 한다. 판단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흔쾌히 여기서 일박을 하자고 하였다. 방바닥은 자글자글 끓고 있고 화장실도 좌변기가 있으니 걱정말라는 친절한 아주머니도 한 몫 거들었다.
 

콘도에 익숙한 다섯살난 딸아이는 "아빠, 여기가 콘도야. 이상하네." 실망한 듯 한마디 던진다. 시무룩한 딸아이를 데리고 근처 작은 가게에 갔다. 면도기와 생수 등 이것 저것 필요한 것을 사고 방에 들어왔다. 밖은 영하 15도를 넘는 강추위에 지레 겁을 먹고 방바닥에 개구리처럼 달싹 붙어 꼼짝을 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설면서도 친숙한 물건들이 즐비하다. 리모콘이 안되는 TV, 주인아저씨가 짜맞춘 듯한 받침대, 시골집에서만 볼 수 있는 커튼, 벽에 부착된 옷걸이, 어지러운 전선줄 등을 한동안 멍하니 쳐다 보았다. 그 흔한 마트도, 노래방, 술집도 없으니 이 긴긴 밤에 자연 할 일이 없어졌다.


바람이 창을 흔드는 소리에 커튼마저 놀란다. 씻어야 하는데 얼기설기 임시방편으로 만든 화장실은 이미 찬바람이 차지해 버렸다. 방바닥은 뜨겁고 얼굴 위 공기는 차갑다.


 이것도 추억일 터, 여행에서 민박을 많이 했건만 이렇게 소담한 민박집은 처음인 듯 하다. 이불을 덮고 꼼짝을 하지 않으니 고향집같은 평온함마저 든다.


몸이 어느 정도 덥혀지자 할 일이 없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방안 이리저리를 훑어보니 처음과는 달리 정겹게 보인다.


세면대가 따로 없어 키가 작지 않은 내가 쪼그리고 앉아 씻으려니 여간 곤욕이 아니다. 다 씻고 나니 주인아주머니 말이 떠올랐다. "냄새 때문에 하수구를 막아 놓았으니 다쓴 물을 부을 때에는 막은 것을 뺴내고 물을 부으세요." 혼자 끙끙거리며 막은 물체를 끌어 당겼다. 양말, 천 등으로 하수구를 1차로 막고 봉지에 물을 채워 2차로 막아 놓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수구도 그러하거니와 쪼그려 앉지 않고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대야를 올려놓고 씼었으면 허리는 안아팠을텐데..... 으이...


화장실은 백열등이 있었다. 다양한 조명등이 대세를 이루는 요즈음 백열등도 이제 추억거리가 되었다. 단돈 3만원의 민박집에서 나는 그날 밤 그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강원도 오대산 골짜기의 겨울바람소리를 밤새 마음껏 들었으니 말이다. 아니 같이 밤을 보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