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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 기행

연인들의 겨울 데이트 코스, 채석강

연인들의 겨울 데이트 코스, 채석강
- 잿빛 하늘에 파도가 울다.


월명암에서 보지 못한 낙조가 아쉬워 수성당으로 향했다. 하섬 건너편 벼랑에 이르자 해가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새우처럼 웅크린 하섬은 바다에 떠있는 연꽃과 같다 하섬이라 하였다. 붉은 햇덩이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숨어 버렸다.


이름처럼 붉은 적벽을 지나 채석강에 도착하니 어느새 사위가 캄캄하다. 채석강은 워낙 번질나게 들리던 곳이라 머물 계획은 없었다. 어둠이 내리고 숙소를 잡기가 마땅치 않아 하는 수 없이 채석강에서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날 아침, 오랫만에 채석강을 산책하기로 마음먹었다. 딱히 정해진 일정도 없고 모처럼 바다를 걷고 싶어서였다. 운동장처럼 넓은 바위로 내려서니 수천명은 족히 될 정도의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속된 말로 '바위 반, 사람 반'이었다.


하늘은 우중충 잿빛이다. 바다도 하늘을 닮아 희뿌옇다. 서해에 수십 번을 왔는데도 한 번도 푸른 바다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내가 서해를 찾을 때에는 대개 겨울이었다. 막막한 바닷빛이 주는 외롭고 높고 쓸쓸함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겨울이 오면 연인들이 채석강을 자주 찾는다. 서해 특유의 잿빛이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면, 바다가 끝이 보일 정도로 아름답다면 그 풍경에 빠져 둘만의 오붓한 대화를 놓치게 된다.

지난 겨울의 채석강


때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더욱 살뜰하기 마련이다. 밀려오는 파도에 마음을 나누고 지는 해에 앞날을 기약한다. 수만년을 변함없이 버텨온 바위들처럼 그들의 사랑도 영원하리라고 믿는다. 층층 쌓인 벼랑처럼 그들의 사랑도 하나 둘 쌓아 가리라.


갯바위에는 어느 부지런한 사람이 새벽 댓바람에 굴을 따고 간 흔적이 역력하다. 속을 비우고 바위에 따닥따닥 붙어 있는 굴껍질은 멀리서 보면 바위 위에 피운 꽃들처럼 보인다. 그래서 굴을 석화라고 부르나 보다. 채석강을 찾은 연인들도 단단한 바위에 피어난 꽃처럼 그들의 사랑을 꽃피우리라.



갈매기들이 백사장을 산보하고 있다. 나도 동행할 요량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놈들은 내가 친구가 될 수 없음을 단박에 알아차리고 하늘을 가르기 시작한다. 다가가면 날아가 버리니 그들과 친구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였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이유없이 바다에 돌팔매질을 한다. 한없이 넓은 바다는 아이의 장난을 넉넉히 받아줄 것이다.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 든다. 이태백은 왜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 했을까. 단지 술에 취해 달의 아름다움을 훔치려 했을 뿐인가. 아름다움을 생명과 바꿀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그도 행복한 마지막이 아닐까. 채석강에 서서 이태백이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을 그려 보았다.


채석강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의 경치가 이태백이 빠져 죽은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여 '채석강'이라 불렀다. 변산반도의 최서단으로 옛 수운의 근거지였으며 조선시대 전라우수영 관하의 격포진이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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