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를 빵 터지게 한 무한긍정 딸의 문자
얼마 전이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아내가 껄껄 웃으며 대뜸 휴대폰을 들이미는 게 아닙니까?
“얘 좀 봐! 누구 딸인지… 이리 낙천적일까?”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웃고 있었습니다. 휴대폰엔 딸아이와 주고받은 문자가 있었습니다.
“딸, 시험은 어땠니?”“아는 거 많았어.”
순간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대개 ‘시험은 어땠어?’ 하고 물으면 ‘쉬웠어, 어려웠어, 모르겠어’ 등의 반응이 오기 마련인데 딸아이의 답은 기대와는 달리 생뚱맞았습니다. 참 긍정적인 딸의 문자에 처음엔 어이없기도 했지만, 이내 ‘역시 우리 딸이야’ 하는 안도감에 한참이나 우리 부부는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저는 사실 딸아이가 시험을 친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시험이 있기 며칠 전 일요일에 아내가 딸아이에게 공부 좀 하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물론 그때 저는 무슨 공부를 일요일까지 하냐며 ‘놀아라’ 라고 했었고, 아내는 시험이니 책을 한번쯤은 봐야 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동안 학원도 안 보냈습니다. 다만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가 다니고 싶어 하는 수영장에 보내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 영어 학원을 어쩔 수 없이 보내기는 했습니다만. 올해 초 아내가 영어 학원을 보내야겠다고 말했을 때 안 된다고 딱 잘라서 말했었지요. 아내도 안 보내고 싶은데 3학년 때부터 영어가 정식과목이라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당시 딸아이는 알파벳을 전혀 몰랐으니까요.
“아빠, 알파벳인가 그거 모르면 이상한 거예요?”
저는 당당히 아니라고 했고 딸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거든요. 초등학교 3학년에 무슨 영어과목이 필요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방목을 교육 방침으로 삼고 있는 저는 적어도 초등학교 때만이라도 마음껏 뛰어놀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도 오히려 하지 말라고 하는 편이어서 아내로부터 간혹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대신 딸아이 혼자라 어른에게 인사하는 것,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자기 일은 스스로 하는지 등을 간혹 챙기는 편입니다.
다행히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해보면 늘 씩씩하고 대인관계가 좋다고 해서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지요. 얼마 전에 아내가 이메일로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한 모양입니다. 바쁜 시대에 적절한 새로운 자녀상담방식이더군요.
안녕하세요? 지아 어머니
이메일로 상담을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틈나는 대로 상담할 수 있어서 좋네요. 지아는 집에서도 그렇겠지만, 성실맨입니다.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학교생활을 모범적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주위 친구들한테 신임도 두텁고, 맡은 일도 척척해 내는 똑순이에요. 우리 반 좀 강한 애들도 지아는 안 건드리네요.^^
철도 많이 든 것 같아서 10살짜리 아이라는 느낌이 잘 안 든답니다. 혼자 자란 아이 같지 않게 참 잘 큰 것 같습니다. 부모님 교육 덕분이겠지요? 혹시 고민이 있다거나 상담할 다른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메일이나 전화주세요. 제가 보기엔 현재로선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성적에 신경 쓰지 마시고요. 인성이 두루두루 갖추어진 아이로 클 수 있게 도움만 주세요.
그럼 다음에 뵐 게요~
무엇보다 혼자 커서 예의 없다는 소리를 듣거나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다, 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교육하는데 아내는 온 신경을 씁니다. 다행히 친구들과 잘 지내고 맡은 일을 잘 한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참, 시험도 잘 봤더군요. 100점이 많았습니다. 하여튼 그렇습니다. 아이가 맑고 건강하고 예의 바르게 자라면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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