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 언덕 위 대통령의 별장, 이승만 별장
동해안에는 내로라하는 아름다운 석호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화진포의 명성은 예부터 대단했다. 약 72만평에 달하는 면적과 16km에 이르는 호수의 둘레가 주는 규모를 거들먹거리지 않더라도 화진포는 그 자체로 이름값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화진포
화진포의 가장 큰 매력은 아무래도 석호가 가지는 특징인 호수와 바다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호수는 울창한 송림에 둘러싸여 있고 솔숲을 지나면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기암괴석을 뽐내고 있다. 고요하면서도 선연한 호수와 장쾌하면서도 웅대한 바다에서 호연의 기운이 절로 느껴진다.
이승만 별장
해당화 만발한 별장들의 천국
이러한 기운으로 인해 이곳에는 1900년대 초부터 외국인의 별장이 있어 왔을 정도로 동해안의 명승지가 되었다. 바다와 호수, 송림과 백사장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곳이니 서로 다투어 이곳에 별장을 지었던 것이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화진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곳은 백조 등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다. 가을과 겨울이면 철새들이 떼 지어 찾아와 넓은 호수에서 유유히 노닐기도 한다. 또한 염분의 농도가 높은 담염호로 숭어, 잉어, 붕어, 도미 등 다양한 어종이 있어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호수 주위의 경치가 워낙 좋아 방랑시인 김삿갓은 죽정竹亭, 모연暮煙, 풍암楓岩, 귀범歸帆, 장평長坪, 낙안落雁, 가평加平, 야종夜種을 화진팔경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유명한 별장들이 자연스럽게 많았고 지금도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이 남아 있다. 이승만 별장은 마치 섬처럼 사면이 호수에 둘러싸인 아늑한 숲속에 있다. 김일성 별장은 푸른 동해가 한눈에 보이는 붉은 금강소나무 숲에 성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 아래 한적한 곳에는 이기붕 별장이 있다.
실내에서도 호수가 한눈에 보인다
호수 건너 보이는 김일성 별장
덧없는 인간세상 잔잔한 호수
제일 먼저 이승만 별장으로 향했다.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한 별장은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과는 달리 지나칠 정도로 고요하다. 잔잔한 호수와 짙은 솔숲 아래 사뿐히 내려앉은 그의 별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인간세상의 덧없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별장은 이승만이 부인과 함께 수시로 찾았던 별장으로 1954년 건립되어 1960년까지 사용되었다. 1961년부터 방치되던 것을 1997년 7월 육군이 재건축하여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단층 석조 건물로 면적은 약 27평이다.
집무실·침실·거실을 재현하였으며, 별장에 있던 일부 유품과 이화장에서 역사적인 자료를 추가로 기증 받아 2007년에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이승만 부부가 사용한 침대·낚시 도구·의복·안경·장갑·여권·편지 등 유가족이 기증한 유품 53점을 전시하고 있다. 얼핏 보아도 소박한 그의 유품들에서 독재와 부패, 오만과 독선을 읽기는 어려웠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별장 뒤에는 친필 휘호·의복·소품·도서 등을 전시해 놓은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이 있었다. 이승만이 이곳에 별장을 짓게 된 연유는 YMCA학감으로 있으면서 1911년 전국순회 전도 여행 중 이곳 선교사 별장에 들른 것이 계기가 되어 해방 후 다시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1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이기붕 별장과 함께 이곳은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재현된 거실
집무실(좌)과 침실(우)
침실
집무실 책상 위의 유품들
장개석이 찬하고 그의 부인 송미령이 그려 이승만에게 선물한 산수화(모사본)
집무실
별장 뒤 기념관 전시실 내부
기념관 전시실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마라
별장을 내려와 호숫가로 향했다. 운무가 건너편 산자락에 걸려 있다. 가만히 혼자 걷다 보니 어느새 호수의 끝자락이다. 애잔하게 호수를 바라보며 동상 하나가 서 있었다. 동상은 화진포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당화가 피어 있어 화진포라 불렀다고 하지만 동상이 말해주는 화진포 이야기가 더욱 가슴을 울린다.
옛날 이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했다. 어느 날 스님이 시주를 왔는데 곡식 대신 소똥을 퍼주었고,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소똥을 들고 돌아나갔다. 이를 보고 며느리가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시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나를 따라 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며느리는 고총고개에 이르러 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돌아보니 시아버지 이화진과 함께 살던 집과 논밭이 물에 잠겨 호수가 되어 있었다. 며느리는 애통해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서낭신으로 모셨는데 이후로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화진포’는 시아버지 이화진의 이름 ‘화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청정한 날에는 화진포 호수 한가운데에 잠겨 있는 금방아 공이에서 누런 광채가 수면에 비친다고들 한다.
이런 전설은 이곳 화진포뿐만 아니라 황해도 장연읍에 있는 용소와 동해안 석호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는 서양의 <구약성서>에 실린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신이 벌주기로 하는데, 소돔에 살던 롯과 그 가족만이 신의 선택으로 화를 면했다. 그러나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롯의 아내가 뒤를 돌라보는 바람에 그만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한계는 비슷했나 보다.
호숫가 산소길
화진포에는 호수를 따라 산소길이 나 있다. 섬처럼 생긴 이승만 별장에서 이기붕 별장을 지나 화진포의 성이라 불리는 김일성 별장을 거치게 된다. 이곳에서 한쪽으로는 호수를, 다른 쪽으로는 울창한 송림을 끼고 계속 걷다 보면 어느새 찻골마을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쉬엄쉬엄 쉬다가 걷다가,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며 느릿느릿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다 지치면 잠시 화진포해변에서 바다로 몸을 내어 푹 쉬어가면 그만이다. 약 3km로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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