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의 예쁜 버스정류장
- 청산도 마을 도보여행 ⑧ (청산도 읍리)
트럭에서 내려 읍리로 향했다. 읍리는 그 이름만큼이나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 언저리에는 고인돌과 하마비가 있다. 고인들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청산도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원래는 마을 동쪽 도로변에 남방식 고인돌 16기가 있었는데, 20여 년 전 도로공사 때 흐트러져 지금은 3기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고인돌 옆에는 하마비가 있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비에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고 하나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하마비’라는 글자가 시멘트로 만든 하단에 새겨져 있다. 하마비는 종묘 및 대궐 문 앞에 세워 놓은 비로, 누구든 그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표시다. 왕릉을 비롯한 사찰, 향교 등에 하마비가 있었다.
섬인 이곳에 하마비가 있는 걸로 봐서는 예전 이곳에 향교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신라시대에 읍을 설치하였다는 이야기가 읍리에 전해오지만 고증할 길이 없다. 다만 예전부터 읍범미리, 읍기 혹은 향교동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만 있다.
조선 후기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서 엮은 책인 여지도서에 읍리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만 확실하다. 그럼에도 여러 정황상 읍리는 이웃한 당리와 더불어 일정 정도 섬의 중심 역할을 해왔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인돌과 하마비는 각각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 제108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인돌공원에서 읍리마을로 향했다. 청룡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다. 공원으로 길을 들어서려는데 무언가 눈길을 끌었다. 버스정류장이었다. 정면 벽면에는 ‘태고의 신비 읍리마을’이라고 적혀 있다. 고인돌로 대표되는 읍리마을의 오랜 숨결을 한마디로 표현한 문구이다. 이러한 버스정류장은 동촌마을에서도 본 적이 있다.
읍리마을 버스정류장의 벽화는 2010년에 김상일 화백과 청산愛 회원들이 그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 이름이 있어 아이들이 전부 그렸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학생들이 그린 부분에는 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벽화에는 이 마을을 대표하여 모델이 된 주민 양문수 할아버지도 그려져 있다. 벽화를 그렸던 2010년 당시에 90세의 양문수 할아버지보다 더 연세 드신 분이 있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할아버지가 모델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청산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김상일 화백은 청산도 이곳저곳을 틈틈이 다니며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벽화를 보니 청산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짙은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청룡공원에서는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 남녀 주인공의 어린 모습을 담았다. 지금도 당산나무 아래 돌탑과 당시 사용하던 세트가 남아 있다. 청룡이라는 공원 이름이 다소 뜬금없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어느 선비가 지금의 공원 자리인 마을 앞 들판에 나무를 72그루 심으면서 앞으로 마을에 경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떤 경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름으로 인해 공원도 청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일대에는 수령 200년이 넘는 팽나무와 느티나무 수 그루가 있어 편안한 듯 신성한 느낌을 준다. 이 나무들로 인해 촬영지도 되고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으니 선비가 말했던 경사로 충분하지 않을까. 지나가는 길손들이 돌탑에 돌을 던져 안녕을 빌고 매번 청산도 이곳을 찾으니 이 또한 경사가 아니겠는가.
마을로 다시 나왔다. 배시간이 채 30분도 남지 않았다. 걸어서 도청리로 갈 수는 없었다. 마을버스는 아직 소식이 없다. 더 이상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택시를 불렀다. 경쾌한 목소리의 사내가 금방 가겠다고 전화기 너머로 확신했다.
버스정류장과 마을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택시 한 대가 바로 앞에 섰다. 배시간이 빠듯하다고 했더니 항구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으니 걱정 말란다. 걸어서 왔으니 거리관념을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많이 오면 우리 같은 운수업자들, 식당, 수산업 계통의 사람들은 좋아하지요. 아무래도 관광업과 관련 없는 분들은 그렇게 좋지 만은 않겠지요.” 슬로시티 지정 후 청산도에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게 도움이 되느냐의 여행자의 질문에 그가 말했다. 사실 여행지로 각광을 받을수록 그 혜택은 원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정여행. 여행자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이다. 그럼, 관광정책은? 문득 올바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택시 요금은 3,000원이었다. 사실 섬에서 간혹 택시를 탄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만원이 넘는 경우가 많았다. 청산도에서는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관광객들에게도 기본요금만 받는다고 했다. 관광객들에게 별도의 할증요금을 받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으나 청산도를 찾는 이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자는 것에 모두 동의하여 거리에 따른 기본요금만 받는다고 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항구로 바삐 걸었다. 승객들은 이미 배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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