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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바다 한가운데서 배를 갈아탄다고?



바다 한가운데서
배를 갈아탄다고?
- 머나먼 뱃길, 국토의 최서남단 가거도여행①

국토의 최서남단 가거도 가는 길은 멀었다. 5월 7일 아침 6시. 항구의 아침이 밝았다. 눈을 떠야 했다.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늘 곤욕스러운 일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전날 초저녁에 쓰러져 잠들었기 때문이다. 가거도 가는 배편은 미리 예약했었다. 전화기 너머로 여객선 직원은 7시까지는 꼭 오라고 강조했다.

목포여객선터미널

짐을 꾸리고 모텔 바로 앞에 있는 여객선터미널로 걸어갔다. 3층에서 표를 끊고 나니 배가 뜨기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아침식사를 든든히 해야 했다. 4시간 넘게 걸리는 뱃길이라 지금 먹지 않으면 후회할 터.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인근 식당으로 갔다. 섬에 들어가는 단체손님들이 미리 예약을 해서 처음 간 식당에는 자리가 없었다.

옆 식당으로 갔다.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몇 명이냐고 친절히 물었다. 혼자라고 했다. 퉁명스럽게 앉으라고 했다. 괜히 미안해진다. 내 돈 내고 먹는 밥인데도 늘 그렇다. 떠돌다 보니 혼자 밥을 먹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간혹 눈치를 주는 식당 주인들은 여간 견디기 힘들다. 시간이 없어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불편한 심기를 누르고 앉았다. 자주 자리를 비우는 집에서도 눈칫밥을 먹지 않는데 말이다. 밥이 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여행자가 먼저 “고맙습니다.”하며 밝게 웃었다. 밥상머리에서 찡그리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즐겁게 식사를 했다. 식사를 끝내고 계산을 했더니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하고 주인이 인사를 한다. 여행자의 오해였을까. 아님 기분이 좋아졌단 말인가.

다물도 등대

가거도 가시는 분들은 승선을 하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꼭 1년 만에 다시 목포항을 찾았다. 그때는 3박4일 동안 흑산도와 홍도 일대를 다녔었다. 배는 쾌속선이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의 섬, 가거도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8시 10분. 배는 출발했다. 12시 20분에 가거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1004개의 섬이 있어 천사의 섬으로도 불리는 신안군의 맨 끝에 가거도가 있다. 배는 비금도․도초도․흑산도․태도군도를 거쳐 가거도로 간다. 흑산도에서 뱃길은 홍도와 가거도․만재도 방면으로 나뉜다.

목포 앞바다를 가벼이 빠져나온 쾌속선은 비금․도초도에서 첫 휴식을 취했다. 비금도는 섬의 생김새가 날아가는 새飛禽의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초도는 새 모양의 섬 중에서 큰 섬이라 하여 ‘도치도’로 불리다 초목이 무성하여 목마지로 활용하였기에 도초도라 불렀다고 한다. 두 섬 모두 면 단위로 제법 큰 섬이다.

흑산도 상라산성(왼쪽 위 띠)과 읍동마을, 옥섬(오른쪽)

비금․도초도를 지나면 망망대해다. 좌우로 크고 작은 섬들이 보였던 이제까지의 다도해 풍경은 사라지고 안개와 바다만이 단조롭게 창을 스쳐간다. 꾸벅꾸벅 졸다가 가끔 놀라서 깬다. 지도를 보고 섬의 크기를 가늠해보다가 그마저도 지루하면 창밖을 본다. 여전히 망망대해.

흑산도 진리마을과 해수욕장

배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다물도에 도착했다. 흑산도가 지척이다. 다물도 옆은 바로 대둔도다. 흑산도는 북쪽으로는 다물도, 대둔도, 동쪽으로는 영산도, 서쪽으로는 장도가 가까이 있다. 흑산도 본섬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 홍도, 태도군도, 가거도, 만재도이다.


예리항이 다가오자 흑산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은 흑산도. 반달을 닮은 상라산성이 보인다. 장보고의 해상활동과 관련이 있는 유적으로 전해진다. 산성 아래로는 옥섬이 있다. 옛날에 죄지은 사람을 최장 60일까지 가두던 곳이라 하여 감옥
자를 써서 옥섬이라 했다. 옥섬이 있는 읍동마을은 흑산도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거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흑산도 예리항

배가 항구로 들어가려 몸을 크게 틀자 진리가 보였다. 진리는 흑산면의 중심지로 옛날 흑산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진리당과 용왕당이 있다. 흑산도와 주변 섬에 있는 15개 당집의 본당이다.

흑산도 예리항의 홍어축제

제법 많은 손님들이 타고 내렸다. 예리항 일대에 천막들이 줄지어 있다. 무슨 행사가 있나 했더니 6,7일 양일 동안 홍어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갯내음이 비릿하다. 흑산도에서 잠시 머물렀던 배는 다시 출발했다. 아직도 2시간 이상을 더 달려야 가거도다. 멀고도 멀다.


다시 끝이 없는 바다. 하염없이 달린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무서운 침묵. 다행히 파도는 잔잔했다. 지루한 끝에 배가 섰다. ‘태도’였다. 태도군도에는 상태도․하태도․중태도가 있다. 배는 상․중태도와 하태도 두 곳에 선다. 돌김이 많이 난다 하여 태도
苔島라 하며 하태도에 사람이 가장 많이 산다.


태도는 다물도와 만재도처럼 쾌속선이 항구로 들어가지 못한다. 큰 배를 접안할 수 있는 항구가 없기 때문이다. 주선인 쾌속선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답답하기도 해서 바람을 쐴 요량으로 뒤쪽 갑판으로 나섰다. 배가 멈추는 동안만 문을 개방한다.


멀리 안개를 뚫고 ‘탕탕탕’ 뱃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어선 한 척이 빠르게 다가온다. 방향을 잡느라 이래저래 살피다 이내 ‘쿵’하고 쾌속선에 부딪힌다. 선원들이 분주해진다. 육지에서 가져온 각종 소포와 물품들을 부지런히 종선인 어선에 싣는다. 내리고 타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한동안 분주했던 두 배는 어느새 서서히 멀어진다. 뭍과 섬과의 짧은 만남.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은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수고로움을 겪고서야 겨우 뭍과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어버이날을 맞이해 육지에서 가져온 카네이션 바구니가 눈에 띈다. 꿈을 꾸는 듯 어선은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굳게 문이 닫혔다. 배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1시간 남짓을 더 달린 후 가거도에 도착했다. 이곳도 역시 안개가 심해 섬의 아랫도리만 겨우 볼 수 있었다. 4시간 남짓의 긴 뱃길, 마침내 가거도에 도착했다.

태도

가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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