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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문화재 돌담에 웬 생뚱맞은 사립문




문화재 돌담에 웬 생뚱맞은 사립문
청산도 마을 도보여행 ⑤ (청산도 상서마을)

청산도 상서마을은 동촌마을 바로 옆에 있다. 눈만 돌려도 돌담이 무언가를 속삭이는 풍경은 이곳에서도 계속된다. 층층이 쌓아 올린 돌담에선 시골 농가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원형 그대로의 돌담이 남아 있는 동촌과 상서마을은 그것이 문화재건 아니건 둘 다 돌담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아직 연둣빛을 내지 않는 담쟁이는 돌담에 악착같이 붙어 있다. 동촌마을과는 달리 상서마을에서는 소를 키우는 외양간인 소막을 더러 볼 수 있다. ‘청산미소’라고도 불리는 소막의 창으로 소들이 음매하며 자신이 부재가 아님을 길손들에게 알린다.


환풍과 채광을 위해 골목으로 창을 낸 소막은 청산도의 또 다른 볼거리다. 네모난 창에 둥근 나무를 가로지른 소막 창은 안에서는 자유로이 볼 수 있지만 소가 창에 얼굴을 갖다 대지 않으면 밖에서는 그 존재를 알기가 어렵다.


골목 어느 집에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다. 도화살이라고 불릴 정도로 꽃은 요염한 듯 은은하다. 얼굴에 홍조를 띤 여인네 같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담길에 몸을 맡겨본다.


상서마을은 마을 전체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곳 담장은 돌로만 쌓은 ‘강담’구조이다. 돌의 크기도 일정하지 않고 매우 다양하다. 큰 돌이 아래에 놓이고 작은 돌이 위로 가는 흔한 형태가 아니라 크고 작은 돌들을 서로 맞물려 지극히 자연스럽게 쌓았다. 굽어진 마을 안길과도 조화로우며 마을 주위의 계단식 논과도 퍽이나 잘 어울리는 돌담길이다. 2006년 12월에 등록문화재 제279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구석구석 집이 있는 곳은 여지없이 돌담길로 이어진다. 가만히 골목길을 걷는데 뭔가 부자연스럽다. 뭘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사립문이었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대사립문이 눈에 거슬렸다. 이 집만 그렇겠거니 여겼는데 대사립문은 거의 모든 집에 설치되어 있었다.


‘왠지 생뚱맞네.’

중얼거리고 있는데 마침 마을 주민이 지나간다.

 

“원래 사립문이 있었습니까?”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에게 물었다.

 

“어디요. 원래 없어서요. 문이 필요했간디. 저 뭐시기, 마을 돌담이 문화재로 등록되면서 사립문을 달아주었지요.”

“대문이 있으면 생활하기는 좋겠네요.”

“아니라요. 대문이 없을 때가 더 좋았지요.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

그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사립문이 있는 집들을 하나하나 살펴봐도 다소 생뚱맞다. 형식은 대사립문의 그것이나 기둥 색깔과 문을 엮은 형태가 모두 같다. 일률적으로 만든 대사립문은 천연덕스러운 돌담의 성정을 건드린다. 집집마다 모두 똑같은 대사립문을 보니 문득 예전 새마을운동 때의 통일정책(?)이 떠오른다.

 

대문이 없는 집은 없는 대로,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문짝을 만든 곳은 만든 대로 각자의 집에 맞게 내버려두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복원이라는 미명 아래 가해지는 저 통일성의 무지막지함에 여행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거창한 한옥이 아니라면 대개 우리네 울타리는 질박했다. 가난하고 소박했던 옛 조상들은 산에서 꺾어 온 나뭇가지나 대나무, 갈대, 싸리, 수수깡 따위로 발을 엮어서 울을 만들고 문을 달았다. 어차피 문은 만들지 않아도 그만. 제주도의 정랑처럼 구색을 갖추거나 사립짝을 만들어 여닫는 정도로 충분했다.

 

이처럼 대문은 경계를 명확히 하고 여닫는 기능보다 늘 열어두며 이웃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문이 닫혀 있으면 주인이 없음을 알게 되고, 문이 열려 있으면 주인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 상서마을의 사립문은 지극히 형식적인데다 원래 없던 문을 만들다보니 뭔가 답답하고 부자연스럽다. 애초 섬마을에서 문이 가지는 의미를 염두에 두었다면 하나같이 똑같은 단절된 편리의 문을 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예 대문이 없어 바다와 들판으로 거침없이 소통했던 옛 시절의 질박함이 그리울 뿐이다. 대문이 없어도 돌담이 자연스레 가려 집안이 보이지 않는 게 섬 지방 가옥의 특성이다. 이젠 지나가는 나그네도 물 한 모금 청하기 두려워졌고 달과 바람마저 기웃거리기 민망해진다. 호박넝쿨도, 박 넝쿨도 올려 좀 풋풋한 대문을 만들면 어떨까.

 

울타리와 문은 우리 옛집의 흔적들이다. 달과 바람이 넘나드는 곳. 주인 몰래 담을 넘기가 민망해 살짝 열린 사립문으로 달빛이 스멀스멀 안마당에 들어오고, 바람이 문짝을 살며시 때리며 드나들던 곳이 우리네 대문들이다.


돌담길 끝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물 한 병을 사서 마셨다. 봄날의 열기가 조금은 식었다. 어디서 ‘빠앙'하는 소리가 길게 울린다. 이웃마을에 마을버스가 도착한 모양이다. 잠시 후 도착한 마을버스로 여행자는 구들장논이 있는 양지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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