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섬

구들장으로 논을 만든 청산도 다랭이논




구들장으로 논을 만든 청산도 다랭이논
청산도 마을 도보여행 ⑥ (청산도 양지마을)

청산도에서는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한 풍경을 더러 볼 수 있다. 아직도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손수 낫으로 벼를 벤다. 청산도의 논은 대부분 산비탈을 일구어 만든 다랭이논이라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땅이 많기 때문이다. 청산도만의 그 특유한 섬 농경 방식은 구들장논이라는 다소 생경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수소문을 해 구들장논이 가장 잘 남아 있다는 양지리로 갔다. 마을 표지석 앞에서 유래를 보고 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구들장논이 어디쯤 있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다시 마을 입구로 나왔다. 마침 트럭에서 한 아저씨가 내렸다. 구들장논에 대해 물었다. 그는 양지리에 살고 있지는 않았으나 구들장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마을길을 따라 쭉 가면 정자나무 못 미쳐 구들장논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양지
陽旨마을. 이곳의 봄빛은 유독 강했다. 마을 이름처럼 청산도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다. 암탉 두 마리가 짚더미를 헤치며 모이를 찾고 있었다. 한가로운 봄날 풍경이다. 마을길은 두 갈래 나뉘어졌다. 잠시 주춤하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갔다.

마을 끝에 정자나무가 보이고 공사로 인해 이리저리 파헤쳐진 논들이 보였다. 이곳인가 보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최근 구들장논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정비 중이라고 했다.


구들장논은 청산도를 대표하는 독특한 삶의 문화다. 농토와 물이 부족했던 청산도의 척박한 땅에 한 줌의 곡식이라도 더 거둘 요량으로 만든 것이 구들장논이다. 구들장은 원래 한옥에서 난방을 위해 온돌방의 방고래 위에 깔아 방바닥을 만드는 얇고 넓은 돌을 말한다.

구들장논도 이와 같은 원리로 만든 논의 형태이다. 온돌방의 구들장처럼 얇고 넓은 돌로 구들을 만든 후 그 위에 돌을 쌓고 다시 흙으로 다져 논을 만들었다. 다진 흙 위로 농사에 필요한 물이 고이고 남은 물은 다시 구들 아래의 물길을 통해 아래쪽 논으로 흘러내리게 되어 있다.


지금이야 중장비로 뚝딱 만들면 그만이겠지만 당시에는 괭이로 파고 지게로 져 나르는 등 한 배미의 논을 만들기 위한 청산도 사람들의 고통은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경운기 등 농기계가 들어올 수 없는 구들장 다랭이논은 어쩔 수 없이 사람과 소의 힘으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구들장을 깔고 흙으로 다지다 보니 흙의 두께가 쟁기날의 깊이보다 낮아서 쟁기질을 할 때에는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마늘이나 보리를 심어 수확하고 초여름이면 모를 심는 이모작 농사를 짓는다.

이 척박한 땅을 비옥한 농토로 일군 데에는 섬사람들의 열정과 애환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경사가 진 산비탈에 이렇게 해서 층층 구들장 다랭이논이 생기게 된 것이다. 산비탈과 돌이 많은 청산도의 지형조건을 극복한 섬사람들의 부지런함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구들장논이다.



구들장논을 한참 살피다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한 아이를 만났다. 그런데 아이의 손에는 국자와 프라이팬이 들려있었다. 그러면서도 씩씩하게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학교에서 실습하고 오는 길이에요.” 여행자가 의아한 눈빛으로 보자 아이가 말을 건넸다. 학교에서 요리실습을 하고 돌아오는 아이의 짐은 의외로 많았다. 등을 보니 가방을 두 개나 메고 있었다. 무겁지 않느냐고 했더니 “괜찮아요. 오빠 가방인데 오빠는 요리한 음식들을 들고 와야 하거든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이는 수줍게 인사하더니 골목길로 황급히 사라졌다.


잔잔하던 들판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들판 가운데의 소나무 몇 그루가 여행자에게 손을 흔든다. 여행자도 손을 뻗쳐 아는 체를 했다. 초록의 청보리밭이 파도타기를 시작한다. 열렬한 환영이다. 그 순간 여행자는 무대 위의 응원단장이 된 듯한 느낌이다. 들판에 서서 봄의 축제를 한껏 즐겼다.



소막에서는 인기척을 듣고 소가 음매하며 봄을 길게 내뱉는다.

“굿 보러 가요. 조금 있다 도청리에서 굿판이 벌어진다요.” 버스를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여행자에게 소리쳤다.


김천령의 여행이야기에 공감하시면 구독+해 주세요
▒ 김천령의 지역별 여행지 보기  (http://blog.daum.net/jong5629) ▒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김천령의 풍경이 있는 한국기행]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