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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제주 오름의 여왕 - 다랑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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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오름과 손자봉(손지오름)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 제주도마저 없었다면 이 땅이 얼마나 밋밋했을까.'라고. 제주도를 십여 차례 다녀갔지만 제주도를 가장 제주도답게 하는 것은 '오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도와 마라도, 비양도 같은 섬들, 주상절리 같은 해안명소, 용천이나 쇠소깍 같은 계곡이 있다손 치더라도 제주를 가장 제주답게 하는 것은 단연 오름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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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산굼부리로 대표되는 오름은 '오르다'의 명사형으로 독립된 산이나 봉우리를 이르는 기생화산들을 일컫는 제주말이다. 옛부터 제주사람들은 오름 주변에 마을을 형성하고 농사와 목축을 하며 생활하였다고 한다. 죽으면 오름에 네모난 돌담으로 둘러싼 무덤에 묻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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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 방면 다랑쉬오름 주위에는 수십여 개의 오름들로 장관을 이룬다.

다랑쉬오름은 '비자림'과 용눈이오름'사이에 우뚝 솟아 있어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띈다. 이 일대에서 남서쪽의 '높은오름' 다음으로 높은 해발 382미터의 오름이다.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해수면과 거의 같은 표고여서 다랑쉬오름을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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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다랑쉬 다랑쉬오름을 닮았다 하여 '버금가는 것'의 의미인 '아끈'을 붙였다.

'다랑쉬'라는 이름은 오름에 쟁반같이 뜨는 달의 모습이 아름답다하여 붙인 제주말이라고 한다. 혹은 굼부리(분화구)가 달의 모습처럼 둥글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월랑봉月郞'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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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오름의 밑지름이 1,000여 미터이고 전체 둘레가 3,400여 미터나 될 정도로 넓은 오름이다. 정상의 분화구는 깊이가 115미터나 된다고 하니 그 깊이는 한라산 백록담과 비슷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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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구(굼부리) 둘레가 1,000미터가 넘고 깊이가 115미터에 이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흑을 옮기면서 한 줌씩 놓은 것이 제주의 오름이라고 한다. 다랑쉬오름은 설문대할망이 흙을 놓자 너무 도르라져서 손으로 탁 친 것이 너무 깊이 패여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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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 정상에 오르면 멀리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서쪽으로는 산굼부리와 교래리 일대의 수많은 오름들이 보인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오름들이 가까이, 혹은 멀리 무수히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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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봉(손지오름) 산의 지세가 한라산을 닮아 그 손자뻘에 해당한다하여 손자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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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오름

이 다랑쉬오름에도 제주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4.3항쟁 당시 오름 주위에는 20여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군,경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파괴되자  마을사람들 몇몇이 오름 주변의 자연굴에 피난을 하였으나 토벌대에 의해 몰살을 당하였다고 한다. 1992년 발굴 당시 이곳에서 시신 11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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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주도를 여행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죄의식같은 무언가가 늘 가슴 한 구석을 무겁게 짓누른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제주도 분은 이런 말을 하였다. " 광주분들에게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래도 광주 분들은 저희보다 행복한 분들인 것 만큼은 사실입니다. 저희가 정부에게 사과를 받고 명예회복이 된 것은 반세기가 지나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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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과 둔지봉

광주 사람도 아니고, 제주도 사람도 아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홉스봄의 말대로 하자면 분명 '광기의 시대'였던 그 당시에 이곳 섬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무게는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었다. 굼부리에서 잠시 묵념을 하고 저무는 오름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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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서 본 다랑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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