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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박물관

쌀가마 804개로 탑을 쌓은 놀라운 사진



 

쌀가마니 804개로 탑을 쌓은 놀라운 사진

1908년에 준공된 옛 군산세관 청사 내부에는 옛 군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던 중 놀라운 사진을 발견했다. 쌀가마니로 쌓은 탑이었다. 하늘을 향해 수십 미터 치솟은 쌀가마니를 보고 있자니 놀라움과 동시에 궁금증이 생긴다.

창고에 쌓인 곡물. 1926~33년 사이에 군산내항의 창고 3동에는 쌀 25만 가마를 동시에 보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쌀가마니가 몇 개나 될 것 같아요?”

세관 내부를 설명하던 해설사가 여행자에게 물었다.

“글쎄요. 어림잡아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데요. 몇 개인지 혹시 아세요?”
“예전에 어떤 사람이 세어 보니 804개라고 하더군요.”

해설사의 자신 있는 말에 여행자는 이내 수긍하였다. 얼핏 보아도 그 정도의 수량은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쌀가마니로 탑을 쌓은 사진을 놀라움만으로 볼 수는 없었다. 이 사진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군산항 제3차 축항공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쌀가마니를 탑처럼 쌓아 올렸다. 쌀가마니의 위에서 아래로는 ‘축 축항기공 역전정우회’라는 글씨가 보인다.


1899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된 군산은 호남 곡창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내가는 거점이었다. 전북의 기름진 땅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던 일본인들은 군산을 쌀 수탈의 창구로 만들었다. 1908년에 전주와 군산을 곧장 연결한 우리나라 최초의 포장도로인 전군도로를 내고 호남선과 군산선을 놓아 많은 쌀을 수탈해갔다.

군산세관의 옛 모습. 군산세관은 경술국치 이후 해방까지 일제가 호남, 충청 지역의 쌀, 곡물 등을 수탈하였던 창구로 이용되었다. 지금은 철거되어 없어진 망루가 오른쪽에 보인다.

군산세관의 옛 모습과 쌓아놓은 쌀가마

또한 일제는 효율적인 수탈을 위해 군산내항에 부잔교(뜬다리)를 가설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있어도 수면의 높이에 맞춰 다리 높이가 조절되어 배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시설이다. 일제는 보다 효율적인 수탈을 위해 부잔교를 3개나 설치한 것이다.

                          제3차 축항기공탑. 일제는 효율적인 수탈을 위해 군산내항에 부잔교를 설치하였다.
 
1910년대 쌀을 배에 싣는 광경. 1933년에는 전국 쌀 생산량의 53.4%라는 엄청난 양의 쌀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군산항에서는 1934년 200만석의 쌀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사실 쌀가마니로 쌓은 탑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이렇게 많은 쌀들을 일본이 수탈해갔다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는 놀라움이었다. 사진들을 보며 착잡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산 여행은 개항과 일제 수탈의 역사를 다시 아로새기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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