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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박물관

감귤창고에서 열린 아주 특별한 사진전


 

감귤창고에서 열린 아주 특별한 사진전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에서 나왔다. 봄빛은 따사로웠다. 맞은편 감귤창고로 향했다. 사진작가 박훈일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창고인 <곳간 쉼>에서 바다를 주제로 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김영갑 선생이 제주 중산간마을의 오름을 그의 주요한 작품세계로 삼았다면 박훈일 작가는 제주의 바다를 사진으로 담아내었다. 제주 사람들에게 희망이고 꿈인 바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에서 자신을 비우게 하고 다시 자신을 채워준 곳이 제주의 바다였으리라.

                                                                          박훈일 작품


고등학교 2학년 당시, 김영갑 선생과 처음 알게 된 이후 그를 삼촌이라 부르며 유일한 제자가 되었다는 박훈일 작가는 현재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의 관장이다.

 

김영갑 선생이 루게릭병으로 고통 받다가 2005년 5월 세상을 떠나자 박훈일 작가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냥 멍하니 바닷가 바위 위에서 여섯 달을 보냈다고 한다. 무기력한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넨 것은 바다였고 그는 이때부터 바다를 담기로 하였다.


그의 바다는 등 푸른 고등어처럼 싱싱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인간의 손길이 닿아 훼손된 바다를 뷰파인더에 강렬하게 잡아낸다. 어느 사진에서는 바다는 사랑스럽고 또 다른 사진에서는 바다는 을씨년스러웠다. 그는 제주의 바다에서 현재를 보고 미래의 삶을 가늠해보고자 했던 것일까?

                                                                       박훈일 작품



예상대로 전시 공간은 독특하였다. 원래 제주 감귤을 저장하는 창고를 전시관으로 활용하였다. 사진 작품들 사이로 차곡차곡 쌓인 감귤 바구니가 보인다. 전시관 내에 다리쉼을 할 수 있는 의자도 흔히 볼 수 있는 각목을 묶어 의자대용으로 쓰고 있었다. 제주의 바다를 담은 작가의 작품은 제주인의 삶이 오롯이 담긴 감귤창고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더욱 빛을 낸다. 

 

공간은 의외로 넓고 푸근하였다. 감귤 바구니를 한 쪽으로 모으고 벽면마다 바다사진들을 걸었다. <바다>를 주제로 한 이 전시회는 오는 6월 20일까지 계속된다. 감귤 저장기인 11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는 감귤저장을 위한 창고로 활용되고 나머지 기간은 문화예술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도시처럼 세련되고 화려한 전시공간은 아니지만 제주도의 풋풋함과 농촌마을의 소박함이 전시관에는 배여 있었다.


여행자는 우리네 농촌을 떠올렸다. 이곳 제주뿐만 아니라 농촌의 빈집을 잘 활용하면 창작을 위한 멋진 공간이 될 것이다. 문화가 있는 마을은 애써 만들기보다는 빈 공간을 잘 활용하여 가꾸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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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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