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도 예술이다. 굴뚝 예술의 절정, 경복궁 아미산 굴뚝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을 침전이라고 한다. 왕의 침소인 강년전을 지나 양의문을 들어서면 교태전이다. 교태전은 경복궁 창건 당시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세종 22년인 144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왕비의 침전으로 대궐 안의 살림살이를 총지휘하던 곳이 바로 교태전이다.
교태전 뒤에는 아미산이라는 왕비의 후원이 있다. 경회루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을 옮겨다 인공으로 단을 쌓아 계단식 정원을 만들고 아미산이라 이름지었다. 가운데 단에는 땅 밑으로 연기 길을 내어 후원으로 뽑아낸 육각형 굴뚝 4개를 나란히 세웠다.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고종 2년인 1865년에 경복궁을 고쳐 세울 때 만든 것이다.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연한 주황색 전벽돌을 쌓아 육각형의 몸체 위에 기와지붕을 얹었다. 굴뚝 몸체에는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여러 무늬들을 조각하였다. 봉황, 박쥐, 매화, 국화, 학, 사슴, 불로초, 소나무, 대나무, 돌 등이 그것이다.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봉황은 왕비를, 박쥐는 부귀를, 매화와 국화는 사군자로 군자의 심성을, 학, 사슴, 불로초 등은 십장생으로 장수와 화마,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을 뜻한다. 정원의 아랫단에는 돌로 만든 함지와 화분 등이 놓여 있다. 이중 함월지涵月池는 달이 담긴 호수를, 낙하담落霞潭은 노을이 비친 연못을 의미한다.
계단식 정원은 산을, 돌함지 등은 호수를. 굴뚝의 무늬는 동식물을 상징하여 아미산 일대는 신선이 사는 곳이 된다. 굴뚝의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태전도 헐리는 아픔을 겪게 된다. 1917년에 창덕궁의 침전이 소실되자 일제는 목재를 조달한다는 명분으로 강년전과 교태전을 뜯어 창덕궁 희정당과 대조전을 짓는 데 사용하였다. 현재의 강년전과 교태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경복궁 교태전의 아미산 굴뚝은 보물 제811호로 지정되어 있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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