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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TV, 영화 촬영지

영화 한 편으로 명소가 된 청록다방



 

영화 한 편으로 명소가 된 청록다방

 

<와이키키 브라더스>,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라디오 스타>등은 여행자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들이었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난 후 감동의 여운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그 후 이준익 감독의 음악영화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세 영화는 <왕의 남자>로 알려진 그의 명성보다 나에게는 더 소중한 작품으로 다가왔다.

 

영월, 벌써 네 번째 여행길이다. 강원도로 홀로 떠나온 날 영월에서 방을 구하지 못해 제천시의 한 허름한 모텔에서 밤을 새웠다. 다음날 곤드레밥을 맛나게 먹고 영월 읍내를 쏘다녔다. 한낮인데도 영하 4도인 차가운 날씨였다. 읍내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왠지 낯익은 다방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추위도 견디기 힘들었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서였다.

 

‘청록다방’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간은 오전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손님은 없었다. 멋쩍게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라디오 스타>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주인이 주문을 받았다. 영화 이야기를 하니 주인은 자연스레 여행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청록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경애씨(50)였다.

 청록다방 주인 김경애씨

영화에서 청록다방은 두 장면이나 나왔었다. 주인 김경애씨는 영화에서 대사까지 했던 명색이 배우였다. 실제로 보니 상당한 미인이었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그녀를 살짝 빗겨간 듯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 잔이 바닥을 보일 즈음 김경애씨가 다방 곳곳을 안내하기 시작하였다.

 

영화에서는 다방 실내가 넓게 보였지만 실제로는 테이블 네다섯 개가 놓인 단출한 다방이었다. 촬영 당시의 소파가 워낙 낡아서 그 후로 교체를 하였지만 주방 앞의 소파는 그 당시의 것으로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손님들이 앉은 곳이 안성기, 박중훈 두 배우가 앉은 곳이다. 방문객들의 요청에 의해 테이블과 소파를 교체하지 않고 촬영 당시 그대로 두었다.

영화가 개봉되고 난 1년 뒤에 안성기씨와 박중훈씨가 다시 이곳을 다녀갔다고 하였다. 이곳을 다녀가면서 테이블에 사인을 하였는데 그 후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테이블과 소파를 바꾸지 못하도록 해서 지금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있다고 하였다.

 

영화에 나왔던 종업원은 배우였고 지금은 김경애씨와 종업원 둘이 함께 다방을 운영하고 있다. 벽면에는 영화 촬영장면과 각종 사진들, 유명인들의 사인이 가득하다. 영화가 나온 후 최불암, 신문선 등 많은 유명인들도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김경애씨는 사인 받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영화가 상영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고 하였다. 매출도 많이 올랐느냐는 여행자의 짓궂은 질문에 “영화에 나온 후 외지인들이 요즘도 많이 찾아와요.”라는 말로 대신하였다.

 

한가로이 이야기가 오가는 중인데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할머니부터 중년의 사내, 아이들까지 가족단위로 여행 온 사람들이었다. 조용하던 다방 안은 손님맞이로 갑자기 뜰썩였다. 아직 촬영을 끝내지 못해 허둥대고 있는데 김경애씨가 자리를 정리하며 촬영을 배려해 주었다. 손님을 맞는 틈틈이 설명도 해주었다.

 

간판이 영화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고 하니 얼마 전에 바꾸었다고 하였다. 간판이 바뀐 것을 안 방문객들이 때로는 볼멘소리를 하곤 하지만 사실은 영월군에서 난립하는 읍내의 간판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청록다방이 시범으로 먼저 시행했을 뿐이라고 하였다. 여행자가 보기에도 영화에서만큼의 촌스런 간판은 아니었지만 나름 깔끔하고 심플하여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커피 한 잔에 2,000원. 참 착한 가격이었다. 영화에 나와 제법 번잡하고 유명세를 탔음에도 예전의 소박한 모습 그대로여서 좋았다. 김경애씨가 준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만남의 기쁨과 삶의 여유를 한 잔의 차와 함께-신속배달” 청록다방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월초등학교 인근에 있다.(033-374-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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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