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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TV, 영화 촬영지

추노촬영지 추노 7회에 나온 한탄강의 비경과 고창읍성


 

<추노촬영지> 추노 7회에 나온 한탄강의 비경과 고창읍성

이번 추노 7회에서는 한탄강 고석정이 나왔다. 이대길(장혁)이 언년(이다해)이를 보았다며 일행들에게 말했던 장소이다.


드라마에서 이곳 고석정의 풍광은 잠시 나왔을 뿐이지만 빼어난 경관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이곳은 드라마<선덕여왕>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고석정은 신라의 진평왕과 고려의 충숙왕이 노닐던 곳으로 철원의 대표적인 경승지이다. 조선시대의 임꺽정이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은거한 곳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벽초 홍명희의 소설"임꺽정"에는 고석정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임꺽정은 토포사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지만 이 고장에서는 임꺽정이 물고기인 꺽지로 변하여 깊은 강물에 몸을 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꺽지는 1급수인 맑은 물에만 살며 몸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한탄강은 추가령구조곡이라는 협곡에 형성된 강이다. 화산폭발로 함경도 원산에서 서울까지 길고 긴 띠 모양의 깊은 골짜기가 만들어졌다. 이 푹 꺼진 깊은 골짜기 아래로 한탄강은 유유히 흘러간다. 골짜기 아래로 들어서면 누구나 착각을 한다. 이 골짜기 위는 산이 아니라 드넓은 철원평야임을, 골짜기를 벗어나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다. 한탄강에는 미인폭포, 재인폭포, 순담계곡, 고석정, 직탕폭포 등 명승지가 널려 있다.

삼부연 폭포는 겸재 정선이 금강산을 가다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진경산수화를 그린 폭포이다. 폭포수가 세 번 꺾여 세 군데의 소로 떨어진다 하여 삼부연으로 불린다. 3개의 웅덩이는 가장 큰 가마탕, 중간치의 솥탕, 제일 작은 노귀탕이 있다. 여기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궁예가 철원에 도읍을 할 무렵 이 계곡에는 수백 년 묵은 네 마리의 이무기가 있었다. 그 중 세 마리가 도를 통해 용이 되어 승천을 하였는데, 그 용들이 기암절벽을 치고 오르면서 바위구멍 세 개가 생겼다고 한다. 그 세 구멍에 물이 고여 연못이 된 이후에 삼부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직탕폭포는 지형적 특성상 협곡이여서 대개의 폭포가 올라가야 하는 반면 이 폭포는 평지에서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흔히들 386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든 '모래시계'의 태수(최민수)와 혜린(고현정)의 애틋한 사랑이 남은 곳이다. 여느 폭포와는 달리 80m의 강폭 자체가 폭포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나이아가라폭포라고 한다지만 사실 높이 3~4m 정도의 앙증맞고 조금은 싱거운 폭포이다.



 

추노 7회분에서 고창읍성도 함께 나왔다. 촬영은 고창읍성의 옹성(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성벽)에서 촬영되었다.

고창읍성에는 ‘돌을 머리 위에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성을 세 바퀴 돌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추노 7회분(27일 방송)에서는 솔숲이 많이 나온다. 대개는 소수서원 앞의 소나무숲이며 한 두 장면에서 이곳 고창읍성의 솔숲이 나왔다.

 

고창읍성의 맹종죽림. 중국이 원산지인 이곳의 맹종죽은 1938년 청월 유영하선사가 이곳에 보안사를 세우고 그 운치를 돋우고자 조성하였다고 한다. 추노 대숲 촬영장면은 정확히 어디인지 워낙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카메라에 비친 모습은 대숲만 나와서, 전체적인 윤곽으로 촬영 장소를 유추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전남 담양일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할 뿐이다.

 

고창읍성은 다른 읍성과는 달리 산성처럼 야산에 쌓아 전망이 유독 시원하다. ‘모양성’이라고도 부르는 이 읍성은 백제 때 고창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영광의 법성진성과 정읍의 입암산성 등과 더불어 왜구로부터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성의 둘레가 1,680m에 이르고 여섯 군데의 치와 동, 서, 북의 세문이 있고 성 밖에는 해자를 팠다.


 

이 읍성은 전국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자연석 성곽으로 단종 1년인 1453년에 세워졌다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다만, 성벽에 새겨진 글자 가운데 계유년에 쌓았다는 글자가 있는데, 고창읍성에 관한 기록을 담은 것 중 가장 오래된 책인 ‘동국여지승람’이 성종 17년에 나왔으므로 그 전의 계유년인 1453년에 세운 것이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여자들이 이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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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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