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 찾은 ‘도담삼봉’, 어떤 느낌일까
어쩔 수 없는 여행자의 비애라고나 할까. 일행이 가보고 싶은 곳이 단양이라 하여 군소리 안하고 흔쾌히 응하였다. 단양을 많이 와 보았느냐고 나에게 슬쩍 물어 보았다. 그래서 답을 주었다.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이번이 다섯 번째라고. 이 말에 일행은 약간 겸연쩍어하였다.
내가 좋아 계절마다 시기를 달리하여 10번 정도 찾은 여행지는 종종 있다. 그러나 이곳은 좋기도 하지만 매번 단양을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이들과 동행하게 되어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똑같은 장소를 다섯 번이나 찾게 되었다.
나만의 여행지는 어차피 혼자 다녀야 하기에 이럴 때는 여행 안내자 역할을 하며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일반적인 관광 코스, 그러나 단양 팔경의 진수들만 선택하여 그들 말대로라면 ‘엑기스’만 뽑아 여행지 동선을 그렸다. 나는 다섯 번을 가본 그 여행지를 말이다.
제일 먼저 단양 팔경은 아니지만 빠뜨릴 수 없는 ‘고수동굴’, 남한강과 단양 읍내가 한 눈에 보이는 ‘양백산 전망대’ 그리고 단양읍 야경, 단양팔경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경승지 제4경 ‘사인암’, 제5경인 구담봉과 제6경인 옥순봉을 볼 수 있는 충주호 유람선, 그리고 경관이 훌륭한 이곳 ‘제7경 도담삼봉과 제8경 석문’ 등으로 여행지를 정하였다.
사실 이 코스는 여행이라기보다는 관광의 의미가 더 강한 곳들이다. 이 동선은 제1,2,3경인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을 제외하였지만 단양팔경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코스이다.
도담삼봉은 남한강 가운데에 봉우리 세 개가 떠 있어서 ‘삼봉三峰’이고 섬이 있는 물이므로 ‘도담嶋潭’이라 하였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이곳을 좋아하여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지었다고 한다. 삼봉은 이곳 매포읍 도전리에서 태어났다.
도담삼봉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세 봉우리의 가운데 봉우리가 남편 봉우리이고, 강 위쪽 봉우리가 아내, 강 아래 것이 첩 봉우리이다. 원래 부부바위는 금실이 좋았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자 남편이 첩을 얻게 되었다. 첩은 곧 아이를 갖게 되었고 임신한 것을 자랑하려 첩이 불룩한 배를 남편 쪽으로 내밀자 아내가 눈꼴시어 돌아앉았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어느 해 장마가 심하여 원래 강원도 정선에 있던 세 봉우리가 이곳까지 떠내려 왔다고 한다. 정선 땅 관리들이 세 봉우리를 찾아 이곳까지 와서는 삼봉이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해마다 세금을 걷어갔다. 그러던 어느 해 또 세금을 걷으러 관리들이 오자 한 아이가 나서며 "저 삼봉은 우리가 가져온 것이 아니라 저절로 온 것이니 우리는 세금을 물 수 없소. 정 그렇다면 세 봉우리를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당차게 말하자 그 후부터는 관리들이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단면을 보면 당시 얼토당토아니하게 갖은 명목으로 세금을 거두던 관리들의 학정과 거기에 저항하는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우회적으로 풍자한 게 아닌가 싶다.
일행을 석문으로 보내고 혼자 우두커니 강을 보며 앉아 있었다. 사진 찍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오랜만에 하늘을 원 없이 보았다. 그런데 구름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갑자기 맑아지는 게 아닌가.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구름을 찍기 시작하였다. 이 정도면 노을도 멋질 것이라 예상하였지만 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져 버렸다. 뚜렷했던 구름이 하늘 속으로 흩어져 버렸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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