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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자연지형을 살려 지은 이층 고택, 예천 권씨 종택


 
자연지형을 살려 지은 이층 고택,
천 권씨 종택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경북지방은 조선시대부터 안동문화권이라는 학맥과 풍속이 있었다. 거침없는 평야지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사대부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웬만큼의 경작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산간마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너른 들이 마을 앞으로 펼쳐진다. 대수마을의 야트막한 뒷동산을 배경삼아 다소 경사진 대지에 예천권씨 종택이 있다.


종택의 입구에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3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마을과 영고성쇠를 함께 한 향나무는 '울향鬱香나무'라고도 부른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울릉도로 유배당했던 권오상이 돌아오면서 연못가에 심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랑채(별당채)

종택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육간대청이 넓은 사랑채가 눈에 띈다. 안채와 마루로 연결되어 있으나 독립적인 성격이 강해 '별당채'라고도 한다. 15세기 말엽의 건물로 임진왜란 이전에 초간 권문해의 조부인 권오상이 지었다고 한다. 보존상태도 좋은 운치있는 별당으로 보물 제4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랑채 대청마루

정면에서 보면 누마루가 높직이 앉아 있지만 옆에서 보면 점차 높아가는 지세에 따라 집이 층위를 이루고 있다. 경사진 땅을 부러 파내지 않고 원래 생긴 땅모양 그대로 층을 만들어 집을 지었다.


종택이 있는 죽림리는 풍수지리상 명당 자리로 유명하다고 한다. 초간 권문해가 지은 종택은 한 눈에 보아도 집의 구조가 특이하다.


높아지는 지세에 따라 사랑채의 지붕도 자연 높아져 안채의 지붕과 높이를 같이하고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도 2단으로 된 높은 축대 위에 있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층은 다락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 한옥에서 다락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명확한 이층구조는 이 집만의 독특한 구조인 셈이다.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다. 호방한 사랑채에 비해 안채마당은 턱없이 좁다. 그나마 네칸 대청이 있어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

안채

대청 동쪽의 건넌방이 통로 겸 작은 툇마루 구실을 한다. 그 옆의 좁은 쪽마루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랑 대청으로 이어진다.


사랑채 뒷면

초간 권문해가 지은 이 종택은 규모와 쓸모를 겸비한 조선 초기의 우수한 건물이다. 건물의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조선 초, 중기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예천 권씨 종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01호이다.

사당

권문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사람이다. 송나라 음시부의 '운부군옥'을 모방하여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 풍속, 인물, 성씨 등 11개 항목으로 분류하여 편찬한 20권 20책의 거질 유서이다. 그가 지은 '초간일기'는 당시 사대부들의 생활상과 국정의 대요,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일기이다.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 몇 안되는 일기 중의 하나이다. 이 두 서적은 각기 보물 제878호와 제8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문과 안채

종택에서 얼마간 가면 권문해가 지은 초간정이 있다. 금곡천 깊은 수림의 물가 바위에 앉은 초간정의 풍광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마저 냇물에 씻겨 맑아진다.

죽림리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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