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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호남의 대표적인 명가, 녹우당




 

호남의 대표적인 명가, 녹우당

-전남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양반집



  녹우당과 5백년 된 은행나무

 국토의 마지막 읍내인 해남읍에서 대흥사 방면으로 가다보면 드넓은 벌판이 나온다. 삼산벌이다. 삼산벌은 원래 해남 정씨의 소유였다가 해남 윤씨에게 시집간 딸에게 떼어주면서 해남 윤씨의 소유가 되었다. 해남 윤씨는 해남 정씨의 자손균본의 상속과는 달리 장자상속을 시행하여 재산을 눈덩이처럼 불리게 되었다.


  고산 윤선도 어부사시사 시비

 어초은 윤효정 이후로 불어난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그의 4대손인 고산 윤선도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왔고 고산의 증손자대에 이르러 공재 윤두서를 배출하게 되었다. 그 이후의 시기는 남인이었던 고산의 영향으로 정치적으로 큰 인물이 나오지는 못하였다.



 

 녹우당綠雨堂. 삼삼벌의 끄트머리인 덕음산 아래 깊숙이 자리잡은 곳에 연동마을에 있다.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가옥인 녹우당의 사랑채는 고산이 굴곡 많은 30년의 유배 끝에 다시 관직에 나아가자 효종이 왕세자 시절 사부였던 고산에게 하사해준 집이다. 원래는 수원에 있었다가 효종이 죽자 고산이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여기로 옮겨온 것이다.


사랑채 녹우당

 그 당호를 녹우당綠雨堂이라고 한 것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뒷산의 비자나무가 바람이 불면 우수수 비 내리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혹은 녹우당 앞의 은행나무 잎이 바람이 불면 비처럼 떨어졌기 때문에 유래 되었다는 이야기와 집 뒤의 대나무 숲에서 부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녹우당의 편액은 공재 윤두서와 절친하였던 옥동 이서의 글씨이다. 그는 성호 이익의 이복형으로 동국진체의 원조로 불려지는 당대의 명필이었다. 녹우당 편액 옆에는 원교 이광사가 쓴 정관靜觀, 운업芸業 등의 편액과 나산 윤성호가 어초은의 은덕을 기려 쓴 한시가 걸려 있다.




 

 녹우당에서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건 마을 어귀의 연못인 백련지이다.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연못은 사람들이 흔히 지나치곤 하는 장소이다. 사실 이 연못이 녹우당의 앞뜰인 셈으로 녹우당 원림에서 핵심적인 공간을 차지한다. 연못 안의 섬에는 잘생긴 해송이 있고 아이 얼굴만한 연꽃이 활짝 피어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녹우당의 대문 바로 앞에는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가 30여 미터에 이르고 수령이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대문 바로 곁에 있어 이 고택의 수문장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고산 사당 옆 수령 3백년 된 소나무

 

 사랑채인 녹우당의 뜰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 주위로 각종 나무와 화초들이 가꾸어져 있다. 사랑채를 벗어나 동쪽의 문으로 나오면 고산 사당과 어초은 사당이 있다. 특히 고산사당 옆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 은행나무와 더불어 이 집의 깊은 연륜을 증명해준다.


비자나무숲 가는 길의 송림

 

 어초은 사당 옆의 돌담길을 걸어가면 비자나무숲으로 가는 길이다. 어초은 윤효정의 묘를 지나면 적송이 우거진 숲길이다. 산책하기 좋은 이 산길을 십여 분 가면 비자나무숲이 있다. 덕음산 중턱의 이 숲에는 500여년 된 비자나무 4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어초은이 ‘뒷산의 바위가 보이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라는 유훈을 남기자 후손들이 나무를 신고 보호하여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생채학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비자나무 숲을 내려와 어초은 사당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숲 가운데에 추원당이 있다. 추원당은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어초은 윤효정의 제각이다. 추원이란 먼 조상이나 부모를 추모하여 정중히 공경함을 뜻한다.


추원당(위, 아래)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유물관이다. 사실 예전에는 고택에 종손이 살고 있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방문을 하니 사랑채는 개방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고택을 밖에서만 보고 유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전부였으니 유물관에 대한 애정이 더 각별했는지도 모른다.


백련지와 연꽃(위, 아래 둘)

 

 유물관의 서화는 진품이 아니지만 유물관을 꼭 들려야만 녹우당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보물로 지정된 고산의 친필가첩 산중신곡, 사은첩, 금쇄동기, 노비문권 등의 유물이 있다. 이것들은 진품이다. 국보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백마도와 공재 윤두서의 손자인 청고 윤용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한때 도난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도’ 등은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도난 소동 이후 사진 복제품만 전시되어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유물관 건너편에는 한국문인협회에서 세운 고산의 어부사시사 시비가 있으니 한번쯤 들릴만하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