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호 뱃길 따라 절경에 취하다.
단양 팔경 구담봉과 옥순봉을 유람선으로
나루에서 본 구담봉과 금수산
장회나루,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난장도 이런 난장이 없다. 지금은 호수가 생겨 물이 잔잔하지만 예전 이곳은 급류가 심해 배가 나아가지도 않고 노에서 손을 떼면 도로 흘러내려가서 배와 뗏목이 무척 애를 썼던 장회여울이 있던 곳이다.
나루에 도착하니 유람선을 타려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멀리 호수에 잠긴 구담봉의 절경이 여름의 뙤약볕과 여로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다. 그 옛날 남한강 줄기 따라 배들이 서고 지나갔을 나루는 이제 이곳을 유람하는 관광객들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장회나루
1시 10분. 배가 출발하려면 아직 10여 분이 남았다. 호수에 떠있는 승선장으로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몰아친다. 안내원의 안내 소리가 호수를 울리는 동안 주위 풍광을 바라보았다. 승선장의 왼편으로는 구담봉, 앞으로는 금수산, 뒤로는 제비봉이 호수를 감싸고 있다.
대기하던 사람들은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여기 우리나라 맞아.” “외국 같다.” “이국적이다.” 감동에 젖어 갖은 말들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이 소란은 배에 올라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여행자는 이런 말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말들은 감동에 젖어 내뱉을 수는 있지만 실상은 우리의 자연 경관에 대한 잠재적 자괴감 내지 일종의 몰이해를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외국을 가보지 않았거나 혹은 외국 여행은 경험이 많더라도 우리나라 곳곳을 둘러보지 않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말들이다.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우리의 자연을 깊이 경험하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말들이다.
반대로 ‘우리나라가 최고야’라는 말들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우리의 자연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일 수는 있어도 적절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한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무지한 구호가 남발될 때도 있었다. 영화 ‘서편제’ 로 촉발된 이 구호는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긍정의 힘도 있었지만 보편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안으로만 파고드는 문제가 있었다. 개별 문화가 세계적일 수 있는 것은 특수성과 독창성의 그릇 안에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자연 경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자연도 아름답지만 지구상에는 우리의 자연보다 빼어난 곳도 많다. 다만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그 나름의 풍광이 있을 뿐이다. “차라리 “우리나라, 정말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잠시 생각이 길어졌다. 배는 3층의 대형 선박이다. 섬 여행을 제외하고 내륙에서 이런 큰 선박을 타본 것은 처음이다. 충주호가 육지 속의 바다처럼 넓다는 의미일 것이다. 뱃머리를 서서히 돌리더니 구담봉과 금수산의 협곡 사이로 배는 서서히 미끄러져간다.
구담봉은 장회나루가 있는 장회리에 있다. 굳이 유람선을 타지 않아도 볼 수 있지만 구담봉의 일면만 보여 지니 지금으로서는 유람선을 타야 구담봉의 절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구담봉은 남한강가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거북을 닮은 바위가 있어 구봉, 물속의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다 하여 '구담', 두 말이 합쳐 ‘구담봉’이 되었다. 흔히 ‘그림 같다’라는 말이 있다. 구담봉이 그러하였다.
구담봉을 지나니 오른쪽으로는 금수산. 산 이름처럼 바위가 기기묘묘하고 비단을 두른 것처럼 절경이다. 구담봉의 첫 절경에 너무 취하다보니 옥순봉에 이르기까지의 산세에는 눈길을 덜 주게 된다. 어쩌면 잠시 무언가에 홀린 눈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을 주는 것 같다.
담백한 풍경도 잠시 이번에는 옥순봉이 눈을 어지럽게 한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무수한 암봉들이 비온 후 죽순이 돋아난 것과 같다하여 '옥순봉'이라 불리었다. 옛날 물에 잠기기 전, 단원 김홍도가 52세 되던 해에 그린 옥순봉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준수한 암봉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구담봉과 옥순봉은 '그림같이 경치'가 빼어나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가 그림으로 남길 정도였다.
이런 곳에 살고 싶다.
야외공연장과 분수대
옥순봉은 구담봉과 더불어 남한강가의 최대 풍광을 연출한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다녀가 시를 읊고 바위에 글씨를 새겨 놓았다. 조선 명종 때의 단양군수를 지낸 황준량은 '바위벼랑에는 군데군데 단풍이 물들고/....../조각배에 탄 사람은 병풍 속으로 들어가더라/......'라고 이곳의 절경을 읊었다. 퇴계 이황은 배를 타고 지나며 이곳의 여울마다 시를 지었다고 한다. 옥순봉에는 이곳이 예전 청풍에서 단양으로 가는 입구임을 알린 ‘단구동문丹邱洞門’이라는 퇴계의 글씨가 남아 있다.
옥순대교와 옥순봉(오른쪽)
구담봉 바위벽
옥순봉을 지나 옥순대교를 지나면 기묘한 암릉은 사라지고 금수산과 나란히 하는 뱃길이다. 눈을 시리게 하는 황홀함은 없어도 잔잔한 수면과 더불어 호변 풍광을 만끽할 수 즐거움이 있다. 배는 청풍문화재단지 나루에서 멈추었다. 배는 이곳에서 사람을 태우고 뱃머리를 돌려 장회나루로 돌아간다.
☞ 여행팁 장회나루에서의 충주호 유람은 왕복 1시간 30여 분이 소요된다. 요금은 어른 12,000원, 아이 7,500원이다. 이외에도 충주, 신단양 등 유람코스는 많고 요금도 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유람선을 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충주호 드라이브도 좋다. 특히 유람선을 타지 않고 구담봉과 옥순봉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장회나루에서 충주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곳이 구담봉 일대를 조망하기에 좋다. 옥순봉은 옥순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산기슭에 정자가 하나 있다. 이곳이 옥순봉을 볼 수 포인트인데, 멀리 펼쳐지는 산들의 파노라마도 덤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실제 포인트는 정자에서 더 올라가야 하는데 출입을 막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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