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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산골 깊숙이 숨은 옛집, 묵와고가





산골
깊숙이 숨은 옛
, 묵와고가

- 옛집의 은은한 향기(고향 이야기3)

대문채

합천을 대표할 수 있는 옛집은 과연 무엇일까. 우함양의 유향에 속하는 합천은 예부터 유학의 전통이 강한 지역인지라 옛 가옥들은 흔히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옛집은 묘산면에 있는 '묵와默窩고가'이다.

사랑채 이중의 기단 위에 높이 자리잡고 있다. 동향인 사랑채는 채광을 고려하여 북벽과 동벽은 널벽으로 막고 남쪽은 훤하게 틔워 놓았다.

묵와고가가 있는 화양마을은 가야산에서 뻗어내린 달윤산 자락에 형성된 마을이다. 약 540여 년 전 세조 때 김종서의 처 숙부인 파평 윤씨 14세손 되는 사람이 정난을 피하여 이곳에 은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묵와고가가 있는 화양마을은 합천에서도 산세가 험하고 골이 깊어 은둔자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묵와고가는 이름그대로 깊이 침잠한 '잠잠한 집'이다. 이런 산골에 고래등같은 고택이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이 고가는 조선 중기 선조 때 선전관을 지낸 윤사정공이 인조 때 지은 집이다. 창건 당시는 600여 평이었고 한창 때는 여덟채의 기와집이 백여 간에 이르렀다고 한다.



묵와고가의 대문간채의 문설주에는 '독립유공자의 집'이라는 명패가 달려 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의 유림대표 137명이 독립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작성 서명하고 이를 김창숙이 상하이에서 파리만국회의에 우송한 사건인 파리장서사건에 참여했던 윤중수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동향을 한 사랑채가 이중의 높은 기단 위에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 불쑥 내민 내루는 채광을 고려하여 동벽과 북벽은 널벽으로 막고 남쪽은 훤하게 틔워 놓았다. 특이한 것은 남쪽의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내루 부분은 합각을 세운 팔작지붕의 두 가지 형태라는 것이다. 사랑마당에는 흔히 '선비수'라 불리는 수백년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이 집을 더욱 격조있게 한다.


곳간으로 쓰고 있는 중문으로 들어서면 안채 또한 높은 이중의 기단 위에 자리하고 있다. 집의 앉음새로 인하여 안채 또한 동향이고 부엌이 북쪽에 있다. 이 지역에서는 '정지'라고 하는 부엌의 널판 문짝이 정겹다.




안채는 'ㄱ'자형의 맞배지붕으로 현재 후손이 살고 있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여 출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안마당에 놓인 절구와 맷돌, 중문 행랑채의 디딜방아, 중문채의 곳간과 서벽의 장독대들이 이 집의 살림 규모를 짐작케 한다.




안채를 돌아서 뒷마당으로 가면 가묘가 있다. 가묘 앞에는 수령 약 600년이 된 거대한 모과나무가 있다. 나무 둘레만 6m에 이르고 높이가 20m를 넘는 장대한 모과나무이다.

모과나무 수령 600여 년 된 고목이다. 둘레가 6m, 높이가 20m에 이르는 장대한 나무이다.


합천읍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가면 묘산면 소재지이다. 묘산면 사무소에서 주유소로 난 2차선 길을 따라 가면 4차선인 26번 국도와 합류하게 된다. 합류하기 전의 마을길로 들어가 산길을 넘어가면 된다. 묵와고가는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에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206호이다.

안채 안채 또한 동향이며 이중의 높은 기단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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