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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기행

동피랑 '외딴방' 황두리 할머니




 

동피랑 '외딴방'에 사는 황두리 할머니
- "동피랑에 꿈이 살고 있습니다."


뭐라 할까? 우연은 필연의 다른 말일 뿐이고 필연은 우연의 가장이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종종 만나는 이들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만남이리라. 애초 동피랑이 목적이 아니었다. 통영에 오면 즐겨찾던 강구안의 한 식당에서 멍게비빔밥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하다 문득 고개를 드니 건너편 언덕에 동피랑이 보였다.


봄은 이미 바다를 건너 왔는지 햇살이 눈부시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걷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미로같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끝없이 돌고 싶고 이따금 나른한 봄을 깨우는 개짖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최근 별스럽게 알려진 동피랑은 썩 내키는 곳은 아니었다. 사람사는 곳이고 일명 달동네라 불리는 빈촌에 벽화를 그렸을 뿐인데, 왠 호들갑인가 싶기도 하였다. 감시카메라로 둘러싼 집에 사는 몇 놈들 빼고는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일 뿐인데 뭔가 대단한 발견인 양...... 평생을 이곳에 사는 주민들을 생각하면 동피랑을 한낱 구경거리로 여기고 찾을 수는 없지 않나 싶다.


황두리 할머니를 만난 것도 우연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글을 간혹 쓰곤 하지만 사전에 약속을 하거나 아니면 미리 정보를 알고 취재를 요청하는 게 나의 방식이었다. 사실 황두리 할머니가 누군지도 몰랐으며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방송에 몇 번 나가고 인터넷에 알려진 스타급 할머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달동네 비탈의 좁은 마당에 있는 특이한 화장실이 눈길을 끌었다. 합판을 얼기설기 엮어 바람을 막고 눈을 돌리게 하였다. 지붕은 쓰레트 조각인데 바람에 날려 갈세라 돌을 얹어 놓았다. 화장실을 한참 찍고 있는데 방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할머니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사진 찍으로 왔는가베".
 "예, 동네 귀경도 할 겸 겸사 겸사 왔심더."
"요새 사람들이 참 마알 오는기라."
"사람들이 많이 오면 불편하지예."
"알다. 내사 좋기만 하다 알가. 어지도 한 사람이 사진도 찍고 야그도 하고 갔는디. 그라고 내 용돈하라구 돈도 만원 주고 갔다 알가"

올해 일흔 아홉이신 황두리 할머니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할매요. 우리 어무이하고 연세가 같심더."
"아. 글나"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 많이 닮으셨다.
고향이 비진도인 할머니는 시집온 후 고성에서 잠시 계시다 평생을 동피랑에 사셨다고 한다. 슬하에 자식이 둘이 있고 지금은 아들 한 분과 함께 살고 계신다고 한다.(자세한 이야기는 사생활이여서 생략하고자 한다.) 동피랑에 사람들이 붐비는 걸 할머니는 오히려 반긴다. 외롭고 적적한 생활에 길가는 이들이 간혹 말벗이 되어주니 그게 좋으시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KBS 등 방송에 나온 걸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자신이 제일 예쁘서 사진찍는 이들이 사진빨을 잘 받는다고 꼭 찍어간다고 하였다. 여행자도 한 번 찍자고 하니 이내 포즈를 취하신다. 세간살이를 좀 구경하겠다고 하니 흔쾌히 응하신다. 방 한 칸에 겨우 만든 좁은 부엌, 손바닥만한 마당에 판자로 지은 화장실 하나가 전부였다. 방이 한 칸 밖에 없으니 냉장고도 지붕 아래에서 겨우 비바람을 피하고 세탁기는 아예 마당에 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사진을 찍고 있던 딸아이가 계속 부르고 나서야 할머니와 작별을 하였다. 담배라도 태우시라고 얼마를 드리고 다음에 오면 꼭 들리겠다고 하였다. 골목길을 내려오는 내내 신경숙의 '외딴방'이 떠올랐다. 깊고 어두운, 그러면서도 희망을 버릴 수 없는 동피랑의 외딴방에 황두리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동피랑에 꿈이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