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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2월이면 늦어요, 겨울에 떠나는 남도 동백섬 여행

 

 

 

 

 

 

겨울에 떠나는 남도 동백섬 여행

- 2월이면 늦는다, 겨울에 떠나는 남도여행

 

겨울축제가 연이어 취소되고 있다. 남도에는 이미 봄을 알리는 납매가 피었고, 동백이 꽃을 피운 지는 오래됐다. 이쯤 되면 겨울을 말하는 것보다 봄을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낭만은 아니어도 따스한 봄날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다면 겨울여행은 또 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홍도 죽항당숲에 떨어진 동백꽃 하나.  

 

겨울 저 깊숙한 곳에서 봄의 등장을 예견하는 따스한 남쪽 여행지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겨울이 비켜간 남쪽 바닷가의 섬들이라면 더욱 좋겠다. 섬을 따라 걷다 보면 누구든 두껍게 껴입은 옷을 하나둘 벗어젖힐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겨울은 뭍의 세상에나 머무는 불청객이란 걸.

 

 지심도의 아름드리 동백나무.

 

동백,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지심도

 

먼저 거제로 가 보자. 거제에는 동백섬으로 이름난 곳이 많다. 그중 제일로 꼽는 게 지심도이다. 마음 심 자를 닮은 작은 섬이 전국적인 명소로 된 데에는 방송매체가 한몫을 했지만, 실은 작은 나무 정도로만 여겼던 동백나무가 이곳에선 느티나무만 하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면서부터다.

 

 지심도의 동백 풍경.

 

섬을 한 바퀴 도는 데에는 두세 시간이면 충분한 데다, 장승포에서 겨우 10분 남짓이면 닿는 곳이니 뭍것들이 두려워하는 배 멀미 걱정일랑 접어두시라. 온 섬이 붉어지는 2월부터는 발 디딜 틈이 없으니 한갓진 풍경을 즐기기에는 이맘때쯤이 좋다.

 

             공곶이에서 본 내도.

 

지심도의 유명세와 소란스러움이 싫은 이라면 내도라는 작은 섬을 찾을 일이다. 노부부가 수십 년에 걸쳐 일군 낙원 공곶이가 최근에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거기서 건너다보이는 내도 또한 여행자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내도의 은밀한 숲.

 

짙은 상록수림과 아직은 원시 그대로의 섬 풍경이 남아 있는, 그러면서도 잘 정리된 산책길은 누구라도 이 섬에 들어오면 나만을 위한 여행지가 아닌가 여기게 된다. 인근 지심도의 동백과 견줄 만큼 섬 전체에 동백 숲이 우거져 있다. 섬을 산책하는 데에는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내도에선 그 번잡한 외도조차 한가로이 떠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세련된 동백섬을 찾고 싶다면 장사도가 좋을 것이다. 거제 본섬에서 보면 섬은 누에를 닮아 길쭉하게 보인다. 장사도는 최근에 개발이 되어 단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20여 개의 코스별 주제 정원과 건축물이 있는 예쁜 섬이다. 섬이 속한 곳은 통영인데도 정작 거제도에서 훨씬 가깝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이 천송이에게 프로포즈한 바로 그 섬이란다.

 

             거제도 저구 마을에서 본 장사도. 

 

내도, 장사도, 오동도, 홍도... 그 섬에서 말을 잃다

 

겨울의 봄은 작은 섬에만 오지 않는다. 남해 큰 섬에도 살포시 다가온다. 아직은 바닷바람이 차갑고 땅 기운이 서늘하지만 섬의 햇볕은 무척이나 따스하다. 남해 섬을 느긋하게 돌아보고 여수로 발길을 돌린다.

 

                                       ▲  오동도 해안 풍경.

 

여수에서는 오동도에 들른 후 제법 멀리 봄 마중을 나가야 한다. 먼 섬 거문도에 가기 전에 오동도를 산책해 보자. 지금은 섬의 주인이 동백나무이지만 예전에는 오동나무가 빽빽하여 오동도라 불렸다. 섬도 오동잎처럼 생겼다.

 

            ▲  오동도 시누대 터널.

 

3600그루가 넘는다는 오동도 동백이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만은 동백꽃은 아직 한두 송이 꽃을 피웠을 뿐이다. 그러나 산책로를 따라 섬을 느긋하게 걷다 보면 원시림 같은 동백 숲과 160여 종의 아열대성 희귀수목, 시누대 터널, 하얀 등대, 해안 절경 등 오동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  거문도 등대 가는 길.

 

오동도가 산책자를 위한 섬이라면 거문도는 여행자를 위한 섬이다. 여수에서 배로 두 시간 남짓 가야 하는 섬이다. 동도, 서도, 고도 세 개의 섬이 호수 같은 바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거문도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은 등대 가는 길의 동백 숲길이다. 그 길에선 말을 잃게 된다.

 

 기와집몰랑 산길에서 본 거문도 등대.

 

이왕이면 섬에 내려 곧장 등대로 갈 것이 아니라 거문도 최고의 산길인 기와집몰랑으로 가는 게 좋다. 그 길에서 보는 거문대 등대는 황홀경 그 자체다. 1905년에 세운 거문도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남해안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등대이다. 사전에 예약하면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등대에서 하룻밤 잘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흑산도 사리항 풍경.

 

마지막으로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 흑산도홍도를 가 보자. 흑산도의 진리당숲 동백도 으뜸이지만 여행자의 마음을 끈 건 홍도의 죽항당숲이다. 홍도 하면 누구든 해안절경을 꼽겠지만 여행자는 당숲의 그 웅숭깊은 동백이 내내 그립다. 주민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당숲에는 300백여 년 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  흑산도 진리당숲의 동백.

 

죽항당숲은 150년 전에 조성되어 매년 정월 초사흘이 되면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마을 제사를 지내왔다. 마을의 당신은 산신과 당할아버지로 매년 초사흘 자시에 위쪽에 있는 동백나무 신목 밑에서 산신제를 올리고 바로 밑에 있는 잣밤나무 신목 아래에서 당할아버지를 위한 제를 올린다. 홍도는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자 천연기념물이다. 홍도에 가면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지정된 깃대봉도 꼭 오를 일이다.

 

             ▲  흑산도 진리당숲

 

아직은 드문드문, 겨우 한두 송이 꽃을 피운 남도의 섬 동백. 그래도 봄은 저 아래서 묵묵히 다가오고 있다. 붉은 목덜미 뚝뚝 떨구어내는 비장함은 아닐지라도 봄이 오는 길목은 이미 열려 있다. 이 겨울에 꿈꾸는 봄에 대한 갈망이야말로 겨울을 더욱 겨울답게 보낼 수 있게 할 것이다.

 

            ▲  홍도 죽항당숲의 동백.

 

 

 

남도여행법 - 10점
김종길 지음/생각을담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