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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동백꽃 지심도 하루 산책

 

 

 

 

 

 

 

동백꽃은 아직 일러도… 지심도 산책

 

다만 그 마음뿐. 동백섬 지심도로 간다. 장승포에서 잠시 바다에 몸을 실으면 이내 섬에 이른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느티나무 같은 아름드리 동백나무와 상록수가 섬을 덮고 있다. 제주에서 뭍으로 나오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섬은 정말 마음 心자를 꼭 빼닮았다. 아니 심장의 모양새다. 섬 건너편의 망산 봉수대에 올라 봐도 섬은 꼭 그렇게 생겼다.

 

 

상록수 짙은 섬의 숲 속에는 십여 채의 민박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마끝으로 간다. 민박집에서 오른쪽 숲길을 택하면 섬의 남쪽 끝, 마끝이다. 마치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처럼 섬과 육지 사이는 지척이다. 그래서일까. 섬은 더욱 애틋하다.

 

 

 

검푸른 바다가 출렁이는 낭떠러지인 마끝은 동백섬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기암괴석의 별스런 풍경을 보여준다. 어디 그뿐이랴. 오랜 고사목과 멋스런 소나무 들이 이곳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세상의 끝임을 외치듯 비장하게 도열해 있다. 이따금 오가는 어선들과 바다에 부딪히는 강한 햇살에 섬의 남쪽은 눈부시다. 마끝은 역시 지심도에서 가장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아직 동백은 요원하다. 숲길에서 겨우 한두 송이 꽃을 봤으나 예의 그 선홍빛은 아니었다. 홀로 피어나니 모진 바람을 이겨내지 못해 붉은 기운마저 잃고 있었다. 12월 초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이곳 동백은 4월 하순까지 붉은 꽃빛을 유지한다. 예전에 걸었던 붉은 꽃송이가 수북하게 깔린 동백 숲 터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동백꽃은 아직 일러 아니 피었어도 새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온다. 저건 동박새일까, 아니면 직박구리일까. 새의 노랫소리조차 분간할 수 없는 무지를 탓하며 한 줄기 햇살도 스며들지 못하는 어둑어둑한 상록수림을 걷는다.

 

 

마끝에서 포진지로 가는 샛길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만 알음알음 다니던 옛길엔 대숲이 들어찼다. 초등학교에 들렀다가 포진지로 향한다. 아름다움은 늘 그 안에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울창한 숲에 묘한 두려움마저 엄습해 온다. 이 으슥한 곳에도 섬은 여지없이 역사의 생채기를 드러내고 있다.

 

 

사방이 탁 트인 활주로에서 발길을 돌린다. 섬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바지런함을 버리고 나머진 상상에 맡기기로 했다. 무언가에 쫓기는, 여백이 없는 여행은 늘 바쁘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음을 이곳에서 다시금 확인한다.

 

 

대신 민박집에서 섬 막걸리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주인장이 좋아하는 유행가가 다소 생뚱맞지만(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막걸리 맛은 일품이었다. 그 어설픈 파전은 또 얼마나 맛있든지. 아무튼 이번 지심도 섬 여행은 여기서 끝이 났다.

 

 

 

나중에 장승포 선착장에서 만난 사내만 아니었다면 섬은 그냥 아름답게만 남았을 것이다.

 

“지심도에서 나오는 모양이오. 지금 뭐 볼 것이 있던가요. 봄에 와야 동백이 지천이지. 아참, 거기 아직 모기가 많죠. 예전엔 모기섬이라 불렀어요. 지금은 모기가 많이 없어졌지만요….”

 

그제야 아까 막걸리를 마시며 모기에게 뜯기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배가 들어왔다.

 

 

☞ 지심도에 가려면 거제도 장승포항(지심도터미널)을 찾으면 된다. 배 운항 시간은 장승포에서 8시 30분, 10시 30분, 12시 30분, 14시 30분, 16시 30분에 출발하고, 지심도에서 8시 50분, 10시 50분, 12시 50분, 14시 50분, 16시 50분에 출발한다. 성수기와 휴일에는 배가 증회 운항한다. 요금은 왕복 어른 12,000원, 아이 6,000원이다. 두세 시간이면 섬 전체를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