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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한라산의 속살이 보고 싶거든 용눈이오름에 올라라

 

 

 

한라산의 속살이 보고 싶거든 용눈이오름에 올라라.

     

제주도에서 돌아온 지 3주가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제주에 머물러 있다. 바람처럼 살다간 한 사진가의 사진첩을 뒤적거리며 오늘도 제주 어느 오름을 배회하고 있다. 그가 남긴 흔적을 쫓아 용눈이오름을 찾았다.

 

 

제주에 가면 늘 신들린 사람처럼 찾았던 오름. 이번에는 딸린 이들도 있고 단출한 길이 아니라서 아예 갈 생각조차 없었다. 월정리 해변에서 머리 뒤로 넘어가는 해를 느긋하게 보고 있는데, ‘오름이 보고 싶다’고 누군가 불쑥 말을 꺼냈다. 불현듯 차에 시동을 걸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중산간을 향해 달렸다. 창밖으로 봉긋봉긋 솟은 오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차창 너머로 지는 해를 넋 놓고 보고 있는데 그가 어디로 가느냐고 했다. 엉겁결에 말했다. “용눈이! 용눈이로 갑시다!”

 

 

뉘엿뉘엿 넘어가던 해가 오름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땅거미가 깔렸다. 빛이 사라지니 그림자도 사라졌다. 오름 저편에서 달이 떠올랐다.

 

 

고요 그리고 이어진 적막. 뜬금없이 눈앞에 나타난 초원에 놀란 아이들의 탄성조차 아득히 묻혀 버린다. 그녀는 “오름! 오름!”하며 알 듯 말 듯 연신 소리를 질렀고, 그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오름을 오르는 입구는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소가 나가지 못하도록 고안된 이 장치가 오히려 오름에 오르기 전 마음을 한 번 여미게 한다.

 

 

적막을 깨고 나지막하게 사람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둘, 셋. 젊고 발랄한 아가씨들이었는데 표정은 담담했다. 아니, 경건하기까지 보였다. 능선 사이로 성산일출봉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우도는 능선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이 내려갔다.

 

 

햐!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잠시 올랐을 뿐인데 숨이 턱 막혀 온다. 걸음이 힘겨운 게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다. 이렇게 푸근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토록 평온할 수 있단 말인가. 이처럼 영원할 수 있단 말인가.

 

 

풀숲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주에 올 때마다 오름에 올랐고 그때마다 습관처럼 찬사를 보내곤 했지만 이처럼 마음을 빼앗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달이 떠오르자 빛과 그림자는 사라지고 선만 남았다. 선을 경계로 하얀 달이 솟았고 붉은 소가 울었다. 그제야 이곳이 한라산의 한 자락임을 깨달았다.

 

 

한라산의 크고 작은 3백 60여 개에 달하는 오름. 그는 말했다. 한라산의 속살을 보려거든 오름에 가라고... 설문대할망이 헌 치마폭에 흙을 가득 담고 한라산으로 옮겨갈 때 치마폭의 터진 구멍으로 조금씩 흙이 새어 오름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오늘같이 어스름 질 때 듣는다면 제격이겠다.

 

 

붉은 소, 하얀 달, 검은 하늘, 푸른 풀. 모든 것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람마저 숨을 죽여 버린 이곳에선 풀마저 눕지 못했다. 소들도 큰 덩치를 잊은 채 어슬렁 사뿐, 어슬렁 사뿐 걸음을 옮긴다.

 

 

부드러운 오름 능선을 누이의 가슴이라고 해야 할까. 따뜻하니 패인 분화구를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해야 할까. 겹겹 겹치는 산자락을 살포시 속살이 드러난 색시의 저고리라 해야 할까.

 

 

한참 궁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중산간을 봤다고, 오름을 안다고 얘기하지 말라. 그대가 안개를 아느냐, 비를 아느냐, 구름을 보았느냐, 바람을 느꼈느냐, 그러니 침묵해라.”

 

 

이윽고 그는 말했다. ‘그 도도한 오름이, 광활한 들녘이, 한번 보고 휑하니 지나치는 이들에게 제 속살을 쉽게 내보일 리 만무다. (...) 중산간 들녘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서 씨 뿌리고 거두며 마지막엔 뼈를 묻는 토박이들뿐이다. 최소한 그대들의 신산한 삶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오름을 경외하는 이들만이 그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한라산의 속살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오름을 추천한다. 이것저것 묻는 대신 그저 편안하게 느끼라고. 차를 타고 휑하니 지나치며 일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 속에서 넘치는 생명의 충일한 기운 속에 버티고 서서 온 몸으로 자연의 절규를 들어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앞뒤 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막막함 속에 혼자 내팽개쳐진 절대고독’을....

 

 

끝내 루게릭병으로 침대에 누운 사진가는 그제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20년 동안 오름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용이 누워 있는 듯한 용눈이오름에는 부드러운 선과 풍만함이 공존한다. 봉곳봉곳 솟은 봉우리들이 왕릉 같기도 해 신성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웅장한 다랑쉬오름처럼 화려한 자태는 아니더라도 소소하니 수줍은 아름다움이 있다. 푹 팬 분화구 대신 바다로 흘러내리는 듯한 느릿한 경사가 따듯하다.

 

 

어둠이 능선을 내려와 땅에 깔렸다. 울컥했다.

 

 

삽시간의 황홀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그러니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고요와 적막 뒤엔 평화로움만 남았다. 사진가 김영갑은 ‘나무는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 서 있는 나무가 어찌 열매에 집착하겠는가. 나는 제주를 떠났다.

 

 

☞ 용눈이오름은 높이 247.8m로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다. 예로부터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아서 용와악(龍臥岳), 위에서 내려다보면 분화구의 모습이 용의 눈처럼 보인다 하여 ‘용눈이오름-용안악(龍眼岳)’, 오름의 형세가 용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라서 ‘용논이오름-용유악(龍遊岳)’이라 했다.

 

여느 오름과는 달리 오르는 길이 평탄한 용눈이오름은 구불거리는 세 개의 능선과 분화구가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름으로 꼽힌다. 용눈이오름의 북쪽에는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 있고, 서남쪽에는 손지오름과 동검은이오름이 있다.

 

 

바람의 예술가, 제주 오름에 눕다-두모악 김영갑갤러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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