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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제주의 막내섬, 비양도에서 열린 북카페

 

 

 

제주의 막내섬, 비양도를 걷다

 

이렇게 더울 줄은 몰랐다. 푹푹 찌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열이 턱까지 차오르자 순간 현기증이 났다. 수술 후 아직 완전하지 않은 몸 상태가 염려되어 하는 수 없이 어느 건물로 더위를 피했다. 구름은 뭉게뭉게... 하늘은 파랬다. 바닷바람이 섬을 쉴 새 없이 오갔지만 더위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한림항에서 비양도 가는 배를 탔다. 부두의 끝에 작은 시골버스정류장 같은 비양도 대합실이 있었다. 비양도 가는 배편은 하루에 두 번, 아침 9시에 배를 타고 들어가면 오후 3시에 돌아와야 한다. 배를 타는 시간은 기껏해야 15분 남짓이다. 아침에 들어가서 오후에 나오기까지 6시간의 여유가 있어 작은 섬을 둘러보기에는 충분하다.

 

 

배의 이름은 섬 이름 그대로 '비양호', 배삯은 2000원. 여름에는 12시에 배편이 한 번 더 있다. 큰 섬과 작은 섬을 오가는 배는 19톤으로 작은 어선만하다. 배에 실을 수 있는 인원은 고작해야 선원 2명과 승객 44명이 전부다.

 

 

제주도에서 옥빛 바다로 유명한 협재해수욕장에서 건네다 보이는 작은 섬이 비양도다. 제주도 여덟 개의 유인도 중 여섯 번째로 큰 섬이지만, 가장 늦게 만들어진 섬이다. 늦둥이라 그런지 어미 제주도 옆에 가장 바짝 붙은 막내섬이다.

 

협재해수욕장에서 본 비양도

 

 

배의 출발을 알리는 방송도 없다. 출발 시간도 대중없다. 대신 매표소 직원은 휴가철이라 손님이 오는 대로 출발할 테니, 대합실 주위를 떠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혹시 배를 놓칠까 염려되어 대합실 의자에 고분고분 앉아 가끔 부두 쪽을 흘깃흘깃 훔쳐보았다. "자, 비양도 가실 분 타세요. 지금 출발합니다." 시계를 보니 아직 12시가 되려면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갑판 위는 내리쬐는 햇살에 금방 살갗이 탈 듯했고, 좁은 선실은 열기로 후텁지근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인 채 15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작은 비양항은 그대로 노출 콘크리트, 마침 북 카페가 보여 무작정 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알고 보니 원래 대합실인데 잠시 빌려 북 카페로 운영하고 있었다.

 

 

연신 땀을 훔치고 있는데, 소감문을 적어 달라고 한다. 한림읍 한수풀도서관에서 나온 직원들이었다. 7월 20일부터 8월 12일까지 한시적으로 북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주로 도서관 직원들이나 독서회 운영위원, 새마을문고 회원들이 번갈아 매일 당번을 맡고 있었다.

 

 

처음 북 카페를 열었을 때가 4년 전이었다. 첫 해에는 1주일만 열었다가 점차 반응이 좋아 지금에까지 왔다고 한다. 금, 토, 일 3일만 개방한다. 처음엔 천막을 치고 북 카페를 할 계획이었는데, 마침 마을 주민들이 비어있는 대합실에 공간을 마련해주어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이곳 명당에서 북 카페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 같은 불볕더위에 주민들이나 여행자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섬을 닮은 아이 둘이 책을 보고 있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번진 엷은 미소가 너무나 예뻐 사진에 담았다. ‘찰칵’하는 카메라 소리에 조금은 놀란 듯... ‘괜찮아?’, 하는 표정을 지었더니 금세 환하게 웃었다.

 

 

북 카페는 바다로 넓은 창이 있었다. 마치 무슨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것처럼 풍경이 압권이다. 이날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지만 한림 일대의 아름다운 해안선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창 하나에 풍경 하나가 담긴다. 창은 모두 12개, 그것을 이어붙이니 12폭의 병풍이 되었다. 세상의 어떤 그림이 이보다 아름다우랴.

 

 

잠시 더위를 식힌 여행자는 섬을 순례했다. 세 시간쯤 흘렀을까. 마치 사막의 성지를 순례하듯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살갗이 붉게 탄 채로 녹초가 되어 카페로 돌아왔다. 배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카페 구석구석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혼자 온 듯한 배낭을 멘 도시 아가씨도, 방학을 맞아 외할머니 집을 찾은 듯한 손녀도, 오랜만에 친정을 찾은 아주머니도 이곳 어딘가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이따금 들릴 뿐, 무서운 정적이 흘렀다. 그제야 이곳이 섬인 줄 알았다. 섬에는 섬의 시간이 흐른다. 이곳에선 뭍에서의 바쁜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느긋하게 책이나 읽다 꾸벅꾸벅 졸면 그만이었다.

 

 

창에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이제 섬을 떠나야 했다. 직원은 다시 소감문을 적어달라고 했고, 못 이기는 척 별 고민 없이 글을 써내려갔다. 그러고 보니 비양도를 마지막으로 제주도의 유인도 8곳을 모두 여행한 셈이었다.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우도, 가파도, 마라도, 비양도... 기둥에 기대어 그간 다닌 섬 이름을 하나하나 되뇌어 보았다.

 

 

☞ 비양도는 한림항 도선대합실(064-796-7522, 011-691-3929)에서 타야 한다. 배는 하루에 단 한 번, 아침 9시에 들어갔다 오후 3시 15분 배로 나와야 한다. 여름에는 12시에 중회 운영되기도 한다. 배삯은 어른 2000원, 어린이 1200원이다. 배로 15분이면 비양도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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