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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난 행복을 찾아 이 숲에 갔다

 

 

행복을 찾아 떠난 치유와 명상의 숲, 제주절물자연휴양림

 

"참사람 부족은 자연과 조화를 이룰 줄 아는 대가들이었다. 그들은 우주 만물을 이용하지만 어느 것 하나 어지럽히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날 줄 알았다." -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미국 캔자스시티 출신의 백인 여의사 말로 모건은 어느 날 사막에서 열린 한 원주민 집회에 초대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순두 명의 원주민들과 함께 걸어서 호주 대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넉 달에 걸친 여행의 기록이 <무탄트 메시지>이다.

 

삼나무가 울창한 절물휴양림 입구

 

참사람 부족은 문명인들을 가리켜 '무탄트'라 부른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이다. 기본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를 말한다. 원주민들은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을 같은 형제이며 누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문명의 바람이 몰려와 어머니 대지를 파헤치고, 강을 더럽히고, 숲을 파괴하는 문명인들을 보면서 원주민들은 그들을 '돌연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5만 년 이상 호주에서 살아왔으리라고 추측되는 그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숲도 파괴하지 않고, 어떤 강물도 더럽히지 않고, 어떤 오염 물질도 자연에 내놓지 않으면서 풍부한 양식과 안식처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건강한 삶을 오래도록 산 뒤에,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이 세상을 떠났다, 고 기록되어 있다. 참사람 부족이 던지는 메시지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울길

 

어쩌면 숲에서 태어나 생활하던 인간이 숲을 떠나 도시를 형성하면서 불행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을 때에만 해도 자연과의 조화로운 끈을 근근이 이어왔건만, 산업화로 인해 숲은 파괴되고 인간이 자연에서 완전히 분리된 인간만의 공간인 도시를 만들면서 그 존재 또한 부자연스런 돌연변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이를 문명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도 하지만 실은 인간 자신이 자연으로부터 고립된 존재임을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자연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 존재의 근거마저 잃어버린 것을 뒤늦게 깨달은 인간은, 다시 숲을 찾아 그 상처를 치유하기에 이르렀다.

 

 

숲을 찾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요즈음 부쩍 숲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건 비단 여행자만은 아닌 듯하다. 숲은 인간에게 휴식과 명상, 치유의 공간을 제공해준다. 숲은 우리 심장의 산소 탱크이자 생명의 자궁이다. 숲이 없는 자연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숲에 대한 인식은 빈약하며, 숲의 어느 것 하나 어지럽히지 않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날 줄은 모른다.

 

 

지난 7월 말, 제주 절물자연휴양림을 찾았다. 마침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다소 이른 시간에 휴양림을 향했다. 그럼에도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겨우 주차를 하고 줄을 서서 매표를 한 뒤 휴양림에 들어섰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삼나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삼나무에 눈 맛이 시원했다. 50여 년 되었다는 삼나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에 마음이 맑아지고 몸이 향기로워진다. 마구마구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에 기분마저 우쭐해진다.

 

 

대체 삼나무가 몇 그루나 될까. 울울창창한 숲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도 금방 지워져버렸다. 아무렴 어떤가. 동남아에서 온 수녀님들도 이 모든 걸 사진에 담느라 분주하다. 그 모양이 아이처럼 순수해 보이고 숲처럼 맑아 보인다.

 

 

피톤치드는 오후 12~2시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나무를 깐 길이 숲을 따라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다. 이 길에 그럴듯한 이름이 붙었는데 '삼울길'이다. 제법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삼나무가 울창한 길이라는 의미일 게다.

 

 

 

이곳에서 난 벌써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일상의 번잡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발걸음도 조심조심, 최대한 숨을 죽이고 한 발 두 발. 때론 땅을 향해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소란스런 소리들은 이내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묻혀 버린다.

 

 

절물휴양림 안에는 삼울길, 생이소리질(새소리길), 오름길, 장생의 숲길 등이 나 있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삼울길과 생이소리질은 5.6km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오름길은 800m 정도로 생이소리질과 이어지며 장생의 숲길은 11.1km로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외에도 휴양림 안에는 코스 별로 다양한 길이 있어 시간과 체력에 따라 적당한 산책 코스와 트레킹 코스를 정하면 된다.

 

 

목공예 체험장

 

삼울길 끝에 목공예 체험장이 나왔다. 야외에 나무로 만든 각종 곤충들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실제보다 엄청 큰 다양한 곤충들을 만져보며 놀라워한다.

 

 

 

 

실내에 있는 체험장에선 휴양림 안에서 강풍으로 쓰러진 나무나 자연 부산물을 이용해 곤충이나 목걸이 등을 만들 수 있다. 목공예에 필요한 재료를 주고 만드는 법 등을 설명하여 아이들이 자신만의 상상으로 쉽고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체험장에는 다양한 목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부러진 나뭇가지와 솔방울 등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산림욕 상식>

1. 산림욕하기에 좋은 계절은 피톤치드의 발산이 가장 많은 봄과 여름이다. 그러나 가을과 겨울에도 피톤치드가 발산되므로 계절에 구애 없이 삼림욕은 언제라도 좋다.

2. 산림욕하기에 좋은 시간은 피톤치드 발산량이 가장 많은 정오부터 오후 두 시 사이가 좋다. 그러나 이때는 기온이 높기 때문에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오전 10시경이나 오후 2시경이 산책하기에 좋다.

3. 산림욕하기에 좋은 장소는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소나무 숲, 잣나무 숲, 삼나무 숲, 편백나무 숲 등이다.

4. 산림욕하기에 좋은 복장은 땀을 잘 흡수하고 공기가 잘 통하는 옷이 좋다. 꽉 조이거나 나일론 계통의 옷은 피하는 게 좋다.

 

 

 

 

<행복헌장 10계명-리즈 호가드 저>

1. 일주일에 3회, 하루 30분씩 운동하자.

2.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내가 감사해야 할 일 5가지를 생각하자.

3. 매주 1시간을 배우자나 가족,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자.

4. 아주 작은 화분으로부터 시작하여 식물을 가꾸자.

5. TV 시청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자.

6. 하루에 한 번은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자.

7.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나 지인에게 연락해서 만날 약속을 하자.

8. 하루에 한 번을 유쾌하게 웃자.

9. 매일 자신에게 선물하고 즐기는 시간을 갖자.

10. 매일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자.

 

 

 

아이들에게 목공예 체험을 하도록 하고 숲으로 나왔다. 장생의 숲길을 걸었다. 여태까지의 나무로 된 데크가 없어지고 이곳은 오롯이 흙으로 길이 나 있다. 숲도 인간이 조림한 흔적이 없는 원시의 숲 그대로이다. 걷는 맛이 절로 즐거워진다.

 

장생의 숲길

 

절물휴양림에서 가장 긴 트레킹 코스인 장생의 숲길은 11.1km 정도이다. 장생의 숲길은 노루길, 연리길, 오름길, 내창길로 다시 나뉘며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중간에 교차로에서 질러올 수도 있다. 탐방로에는 이른 봄이면 볼 수 있는 복수초 군락지를 비롯해 박새 군락지, 조릿대 군락지 등 명물인 연리목 등을 볼 수 있다.

 

 

숲길 가운데에 뜬금없이 나타난 시계가 눈길을 끌었다. 인적 하나 없는 이 적막한 숲에 시계를 왜 두었을까. 숲길을 걷다 너무 깊이 침잠하여 어느새 시간마저 잊고 있었음을 기억하라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이곳 장생의 숲길은 오후 4시 이후에는 일몰시간으로 인해 출입을 금하고 있다. 원체 숲이 깊다 보니 시계를 두어 현실로 돌아갈 시간을 일깨워 주는 모양이다.

 

 

한참을 걷다 목공예 체험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작품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번에는 생이소리질(길)로 방향을 잡았다.

 

사방 벽에서 피톤치드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실내산림욕체육관

 

삼나무 숲 사이로 아담한 건물 한 채가 보였다. 실내산림욕체험관이었다. 문을 열자 시원한 냉기가 몰아쳤고, 냉방이 잘 된 실내로 들어서자 나무 냄새가 코를 강하게 자극했다. 삼나무, 편백나무, 소나무 등 나무 종류별로 사방 벽을 두르고 방을 만들었다. 나무의 향기가 온몸으로 파고드는 느낌에 한참을 머물렀다.

 

 

약수암을 지나 장생의 숲길 출구에서 길을 건너자 숲이 모습을 달리했다. 여태까지의 쭉쭉 뻗은 삼나무는 간 데 없고 짙은 활엽수림이 나타났다. 연못 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어 다가갔더니 흘러내리는 물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족욕소였다. 산중에서 흐르는 물에 탁족을 하고 있으니 세상에 이만한 호사가 있을까. 모두들 느긋한 표정이다.

 

탁족을 즐길 수 있는 족욕소

 

활엽수 숲인 생이소리질(길)

 

숲 덤불 사이로 무덤 한 기가 보였다. 제주에선 밭 한가운데나 오름 주변에서 흔히 무덤을 볼 수 있다. 봉분 주위로 돌담을 쌓는데 이를 '산담'이라고 한다. 제주의 산담에는 망자의 혼령이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문인 시문을 둔다.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에 둔다. 시문이 없는 경우는 돌계단을 만들어 영혼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다.

 

무덤의 산담

 

절 옆에 물이 있어 '절물'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늘 깊숙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약수터가 있었다. 원래 절물이라는 지명도 절 옆에 물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 절이 없고 방금 지나온 약수암이 있다. 절물오름에는 큰 봉우리인 큰대나오름과 작은 봉우리인 족은대나오름이 있다. 이 약수는 그 중에서 큰대나오름 기슭에서 나오는 용천수이다. 신경통과 위장병에 큰 효과가 있다는 이 약수는 제주시 먹는 물 1호로 지정되어서인지 물맛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생이소리질에 이르자 삼나무 대신 짙푸른 활엽수가 숲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새소리라는 의미의 제주도 사투리를 길 이름으로 그대로 붙여 정겹기까지 하다. 절물오름 둘레로 난 이 숲길에선 그 이름처럼 새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숲이 이따금 틈을 내어준 곳에는 하늘이 열리고 시원한 오름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나무로 된 데크가 있어 장애인이나 노약자도 숲을 산책할 수 있다는 게 좋은 점이다. 생이소리질은 최근에 1.8km가 연장되어 더 오래도록 우거진 활엽수 길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숲을 내려서는 길도 서운하지 않다. 곧 숲을 떠날 여행자에게 끝까지 그 고유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는 듯 숲속의 집과 광장에 이르렀어도 변함이 없다. 인간은 변해도 숲은 늘 그 모습 그대로 인 걸 이곳에서 새삼 느끼는 건 그 또한 얄팍한 인간인 나의 생각일 수도 있겠다.

 

 

 

처음 숲에 들어섰던 삼울길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멀리서 아이가 뛰어왔다. 아이의 손에는 솔방울 하나와 작은 나무판이 들려 있었다. 나의 배낭에 솔방울을 달았고, 나무와 버섯지붕을 한 집은 우리 집 현관문에 지금도 달려 있다.

 

딸아이가 목공예 체험장에서 만든 소박한 나무 작품

 

☞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은 제주시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다. 제주시 명림로 584에 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이다. 숲속의 집, 휴양관 등에서 숙박도 할 수 있는데, 매달 1일 9시부터 다음 달 예약이 시작된다. 휴양림 이용에 관한 자세한 것은 절물휴양림 홈페이지(http://jeolmul.jejusi.go.kr)를 참고하면 된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