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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구름과 함께한 가을 악견산 산행



 

구름과 함께한 가을 악견산 산행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았습니다. 여행자의 고향은 합천 골짜기 어느 산골입니다. 고향땅은 최근 유명해진 황매산과 모산재를 비롯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집에서 십여 분 가면 합천호가 있고 그 주위에 흔히 합천의 삼(신)산이라 불리는 세 바위산이 있습니다. 어릴 적 소풍을 자주 갔던 허굴산,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가 있던 봉화산(금성산), 합천호가 한눈에 보이는 악견산이 그것입니다.

 오른쪽 벼랑 위에 할머니 산소가 있다

오늘은 악견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산 중턱 절벽 위에 있는 할머니 산소에 벌초를 하기 위해섭니다. 할머니 산소는 해발 634m인 악견산 정상 가까이에 있어 암릉 산행을 해야 다다를 수 있습니다. 명절이 오면 매번 사촌들과 무리를 지어 산행을 하곤 합니다.

 산소에서 본 삼산들은 해발 300미터 정도인 고원지대다. 왼쪽으로 난 길로 가면 황계폭포가 있고 합천읍으로 이어진다.

산행은 대밭골 죽전마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토실토실 익어가는 밤나무 숲 아래를 얼마간 오르면 거친 암벽이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촛대 모양을 한 바위가 서있는 암벽 사이로 접어들면 어느새 경사는 가팔라지고 숨이 턱에 찹니다.

 악견산성터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앞이 탁 트인 바위 위에 앉았습니다. 뒤로는 성벽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허물어져 얼핏 보면 돌무더기로 보일 뿐이지만 이곳은 옛 성터였습니다. 악견산성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469년(예종 원년)입니다. 이 문헌에 따르면 1439년(세종21)에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성종 때의 <동국여지승람>에는 악견산성은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2,008척(약 660m)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 때인 1594년에 곽재우 장군이 유성룡의 지시로 산성을 다시 보수하였다고 합니다. 악견산 곳곳에서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으름덩굴

예로부터 이곳은 전략적인 요충지로 알려졌습니다. 그 옛날 후삼국 시절 백제의 견훤도 대야성을 치기 위해 이곳을 지났으리라 짐작됩니다. 거창에서 대야성인 합천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지나지 않고는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죽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산행을 시작합니다. 우거진 산죽이 허리를 숙이게 만듭니다. 거만한 사람은 절대 악견산을 오르지 못합니다. 거친 암벽과 가파른 경사, 우거진 산죽숲을 지날려면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지요.

 

터널 같은 산죽숲을 지나면 시원한 솔밭입니다. 솔숲 여기저기서 송이를 딴 흔적이 있습니다. 혹시나 싶어 일행들도 뒤졌으나 이미 다른 이들이 채취를 하고 난 후였습니다.

 

초가을인데도 날씨가 너무 무더웠습니다. 최근 들어 합천이 유독 더운 데는 합천댐이 한 몫 거들고 있습니다. 댐이 들어선 곳치고 습도와 온도가 높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예전에 댐이 선 상류에서 합천까지 이어지는 황강 물줄기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댐이 없었더라면 이곳은 경남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형님들은 이구동성으로 댐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며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경제성도 약한 합천댐이 지금이라도 없어져 손바닥만한 은어가 넘쳐나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삼산 중의 하나인 허굴산(682m) 전경

산행 한 시간여 만에 할머니 산소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 산소는 옛 절터였다고 합니다. 주위에는 아직도 기왓장이 더러 있고 자연 암반 위에 기둥을 세웠던 제법 큰 홈을 볼 수 있습니다.

 절터였던 할머니 산소 주위에는 자연암반 위에 홈을 내어 기둥을 세웠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형님들과 형수, 조카 등 십여 명이 풀을 베기 시작하자 20여 분 만에 벌초는 끝이 났습니다. 절을 올리고 난 후 벼랑 끝에 서봅니다.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집니다. 이곳에 서면 허굴산, 금성산이 코앞이고, 고원인 삼산마을 일대와 황매산, 의령 자굴산 등이 한눈에 보입니다.

여행자가 발견(?)한 여근바위. 아래로는 낭떠러지여서 전체 모습을 담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보면 정말 예술이다.

보다 좋은 전망을 보려 벼랑 끝 바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바위 생김새가 기묘했습니다. 여자의 성기를 꼭 닮았습니다. 여근바위가 있다고 떠들어댔더니 사람들이 관심을 보입니다. 하나같이 꼭 닮았다고 하더군요. 대개 여근바위가 있다면 남근바위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제야 올라오면서 보았던 촛대를 닮은 바위가 남근을 닮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여근바위에서 보니 남근 바위가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입니다. 억지로 끼어 맞추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오랜만에 재밌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줍니다. 술과 떡을 나눠먹고 일행 모두는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구름은 점점 붉어졌습니다.

 봉화산(592m)

악견산이 슬금슬금 내려온다

웃옷을 어깨 얹고 단추 고름 반쯤 풀고

사람 드문 벼랑길로 걸어 내린다

악견산 붉은 이마 설핏 가린 해

악견산 등줄기로 돋는 땀냄새

밤나무 밤 많은 가지를 툭 치면서 툭

어이 여기 밤나무 밤송이도 있군 중얼거린다

악견산은 어디 죄 저지른 아이처럼 소리 없이

논둑 따라 나락더미 사이로

흘러 안들 가는 냇물 힐금힐금 돌아보며

악견산 노란 몸집이 기우뚱 한 번

두 번 돌밭을 건너뛴다 음구월

시월도 나흘 더 넘겨서

악견산이 슬금슬금 마을로 들어서면

네모 굽다리밥상에는 속 좋은 무우가 채로 오르고

건조실에 채곡 채인 담뱃잎

외양간 습한 볏짚 물고 들쥐들 발발 기는

남밭 나무새 고랑으로 감잎도 덮이고

덜미 잡힌 송아지같이 나는 눈만 껌벅거리며

자주 삽짝 나서 들 너머 자갈밭 지나

검게 마른 토끼똥 망개 붉은 열매를 찾아내고

약이 될까 밥이 될까 생각하면서

악견산 빈 산 그림자를 밟아가다 후두둑

산이 날개 터는 소리에

놀라 논을 질러 뛴다

 

                                 -----박태일의 <가을 악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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