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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신록의 계절 숲길에는 신선이 따로 없네


신록의 계절, 숲길에는 신선이 따로 없네
- 노인도 아이도 걷기 좋은 진주 월아산 숲길

지난 주말 오랜만에 가족 나들이를 했습니다. 마땅히 떠오르는 장소도 없어 인근에 있는 청곡사로 향했습니다. 청곡사는 월아산 기슭에 있습니다. 진주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물 맑은 금호지(진주시 금산면 소재)에서 보면 달을 토해내는 듯한 월아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아산토월牙山吐月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진주의 명소를 꼽을 때 늘 이곳은 빠지지 않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와는 달리 월아산의 지명은 달과 관련이 없고 고대 국어에서 '산'이나 '높다'의 뜻을 가진 '달‘ 혹은 ’달아'에서 나왔다는 박용식 교수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월아산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의미로 ‘달아’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 해발 482m인 월아산은 옛 진주시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도시 가까이 아름다운 숲이 있다는 그 자체가 좋습니다. 청곡사 가는 길에는 혁신도시가 들어설 곳이 있습니다. LH공사 문제로 한동안 소란했던 진주, 예전에는 서정이 빼어난 고장이었습니다. 그 옛날 남강 변에서 노닐던 청학이 월아산 기슭으로 날아가 앉은 곳에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걸 보고 도선국사가 청곡사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아직도 학과 관련된 명칭들이 청곡사에는 더러 남아 있습니다. 학이 찾아온 다리라는 방학교와 학을 불러들인다는 환학루가 그것입니다. 비가 내린 후라 방학교 아래의 계곡 물소리가 힘찹니다. 쉼 없이 흘러내리는 물은 아래 저수지를 가득 채웁니다.


노인 두 분이 앞서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여유로운 걸음에서 인생이 묻어납니다. 청곡사를 느릿느릿 둘러본 후 방학교를 다시 건너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숲의 바깥은 한여름 땡볕을 방불케 할 정도로 햇살이 따갑습니다.


오늘 걸을 거리는 청곡사에서 두방사까지 약 2km 정도입니다. 청곡사에서 능선에 있는 체육장까지는 930m 정도로 약간 가파른 길입니다. 체육장에서 두방사까지도 거리는 비슷한데 아주 평탄한 숲길입니다.
이 길은 전국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명품길입니다. 여행자가 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천하는 길입니다.


오른쪽으로 구름다리가 보입니다. 아이가 재빨리 뛰어갑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저보고 먼저 건너보라고 합니다. 아이처럼 방방 뛰며 구름다리를 건너자 아이도 자신감이 생겼는지 활짝 웃으며 건넙니다.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며 한동안 즐겼습니다.


다리 건너 안쪽 숲에는 수목장이 있습니다.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는 숲입니다. 돌길이 쭉 이어집니다. 누군가 처음 쌓기 시작한 돌탑들이 보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한 줌에 지나지 않았을 돌무더기가 이제 제법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습니다.


평소에는 물이 없던 작은 옹달샘에도 오늘만큼은 물이 펑펑 솟습니다. 숲의 푸름이 마구 마구 솟아납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고갯길 체육장에 도착했습니다. 각종 운동기구들과 벤치와 평상이 있어 사람들은 이곳에서 대개 쉬어갑니다.

                                두방사

바람이 쏴 하며 불어옵니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귀를 맑게 합니다. 아이가 앞장서서 다시 길을 걷습니다. 길은 이곳에서 정상과 두방사 가는 길로 나뉩니다. 오늘은 정상 대신 산기슭을 에둘러 가기로 했습니다.


발에 푹푹 감기는 흙길이 부드럽습니다. 작은 키의 나뭇가지들이 옷을 살짝 스치며 인사를 건넵니다. 숲에는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가득합니다. 이따금 지나가는 등산객들도 그 소리에 묻혀 바람처럼 숲으로 사라집니다.


갑자기 숲이 소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한 무리의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지나갑니다. 체육관에서 온 아이들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처음 보는 여행자에게 밝게 인사를 했습니다.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여행자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밝은 아이들은 우리 숲의 건강한 미래입니다.


아이가 지팡이를 찾습니다. 숲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 건넸습니다. 산에만 오면 버릇처럼 지팡이를 찾는 아입니다. 산길은 오르막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지만 구불구불 산허리를 재미있게 감아 도는 길입니다.


마침내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두방사도 지척입니다. 삼림욕장으로 가는 길을 보내고 절로 향했습니다. 지난 2월에 입학을 앞둔 딸아이와 단둘이 두방사에서 산책을 했었습니다. 두방사는 원래 청곡사의 암자였으나 1962년 해인사 말사로 등록되면서 두방사로 승격되었습니다. 절마당에는 금산사와 해인사 원당암, 이곳 두방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다층석탑이 있습니다. 원래 인근의 법륜사에 있던 탑인데 임진왜란 때 절이 소실되어 탑만 남아 있던 것을 1940년대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두방사 우물에서 목을 축인 후 쉬었습니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서울에서 손님이 오기로 했는데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햇살이 숲의 빈틈을 노려 파고듭니다. 햇살에 번득거리는 나뭇잎이 싱그럽습니다. 조금 전 오를 때에는 못 봤던 풍경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분홍의 싸리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습니다. 자꾸만 걸음을 멈춰 뒤돌아봅니다. 숲의 봄날은 그렇게 저물고 있었습니다. 신록의 계절 5월의 숲길에는 신선이 따로 없었습니다.

숲의 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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