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어느 예술가와의 만남
<세상은 무대 위의 사람들을 동경한다. 화려한 조명과 대중들의 환호는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들은 점점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사람들도 그들에게 자신의 온 욕망을 퍼붓는다. 무대 위의 사람들은 좀처럼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법이 없다. 무대 아래로 내려서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도 곁을 떠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좀처럼 무대 위의 사람들을 배반하지 않는다. 설혹 무대 위의 사람들이 그들을 배신할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만 여길 뿐이다.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탓하며 곁에서 박수치며 함께 했던 사람들을 원망한다.>
여행은 무대 아래의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이다. 화려한 조명도 없고 우레와 같은 함성도 들리지 않는, 열광하는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그런 곳을 찾아가는 여정 말이다. 무대 위를 빛나게 하기 위해 낮은 곳에서 그냥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여정 말이다. 아무런 욕심도, 아무런 미래도, 아무런 힘도 없이, 버릴 수 없는 희망 하나 부여잡고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들, 그들은 바로 민초이다. 여행자는 언제나 그들이 그립다.
그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아니 필연일지도 모른다. ‘굿’ 전문가인 하선생님의 소개로 올 유월에 그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여주에 화가이자 도예가가 있는데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에 나는 흔쾌히 그러마라고 하였다. 사실 하선생님의 제안에 선뜻 동의한 것은 그가 풍채도 좋을뿐더러 수염이 멋있다고 하여 도자기 빚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면 좋은 작품이 될 거라는 유혹 아닌 유혹 때문이었다.
그는 여주군 북내면 고달사지 옆의 골짜기를 한참 들어가야 있는 즘골이라는 곳에 옛 집을 개조하여 황토로 벽을 바른 집에 살고 있었다. 술꾼인 우리는 막걸리 몇 병과 김치 한 봉지를 들고 그의 집을 찾았다. 해질녘이었지만 초여름의 더운 기운이 여전히 그 집을 맴돌고 있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간단한 인사를 건네자마자 술자리를 벌였다. 그는 김원주 화가였다. 아내 또한 미술을 전공하여 부부화가로 이곳에 정착한지는 10년의 세월이 넘었다고 하였다. 한눈에 보아도 집안 곳곳에는 그들 부부의 손길이 묻어났다.
야외에서 조촐하게 이어지던 술자리는 어둠이 내려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반가운 손님이 왔다며 두툼한 돼지고기를 아낌없이 숯불에 올리기를 수어 번, 달이 뜨기 시작하였다. 전날 산삼을 먹었다는 하선생님은 몸살기운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떠났고 무슨 풀뿌리를 주냐고 투덜거리면서도 냉큼 받아먹었던 여행자는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윽고 술자리에는 둘만 남게 되었다. 그는 뜬금없이 노래 한 자락을 하기 시작하였다. 손님이 왔으니 환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노래 솜씨는 일품이었다. 기계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여행자를 반기는 가사를 제멋대로 붙여 구성진 노랫가락을 길게 뽑아내었다. 덩실덩실 어깨춤을 같이 추다 보니 그의 등 뒤로 달이 높이 떠있었다. “달 보러 가세”. 언덕 아래는 모내기를 막 끝낸 뒤의 무논이었다. 경포대에서 볼 수 있는 달이 다섯이라고 했던가. 그날 우리가 본 달은 아쉽게도 넷이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황홀하게 보였던 달은 논바닥에 비친 달이었다. 그 달을 잡으러 허우적거리다 결국 달에 빠져 버렸다. 첫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자신을 버리니 새로운 자신, 벗이 생긴 것이다.
그 후 우리 모두는 한동안 만날 수 없었다. 서로 사는 곳이 너무 멀리 있으니 바쁜 세상에 만나는 게 여의치 않은 건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그리움은 문명의 이기를 빌려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지난 10월 여행자 홀로 강원도로 단풍 여행을 계획하면서 우리는 다시 모였다. 단풍을 담고 싶은 욕심은 굴뚝이었지만 단풍은 올해가 아니더라도 볼 수 있을 터이고 사람은 자주 보지 않으면 소원해지는 법이여서 미련 없이 여주로 차를 돌렸다.
두 사람은 여주 읍내의 중앙거리에 있었다. 남한강의 보 설치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하던 김원주 화가와 행사 취재 차 여주에 와 있던 하선생님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저녁 어스름이 짙게 젖어 들어올 무렵 행사는 끝이 났다.
다음날 지우재를 찾았다. 지난 첫 만남에서 밤새 마신 술로 인해 도망치듯 빠져 나온 터라 미처 살피지를 못했었다. 지우재至愚齋. 어리석음을 잃어버린 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우직함과 어리석음은 더 이상 삶의 논리가 될 수 없는 세상에서 그는 무엇을 지키고자 한 것일까. 어리석음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낸 출발점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그의 어리석은 공간의 문을 열어 보았다. 네모난 공간을 만들어 몇 점의 도자기와 토우들로 벽면을 장식하고 그 창을 통해 안과 밖이 소통하게 만들었다. 원래 지우재는 부부화가가 살던 살림집이었으나 도자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지우재 안은 옛 한옥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행자의 눈길을 끈 것은 천장 서까래였다. 아무런 장식 없이 옛 가옥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천장이었다. 100년이 넘었다는 이 집은 화가의 손길로 앞으로도 수백 년은 너끈히 견딜 것 같다. 사람의 온기는 없었지만 도자기에 박힌 혼이 집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지우재 좌측은 손님을 위한 공간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차 한 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공간이 꾸며져 있다. 차 대접을 위해 주인이 앉는 자리 한편에 있는 작은 수도와 설거지통, 배수구가 기가 막히게 교묘하다. 불편할 수도 있는 작은 공간을 차 대접을 위해 실용적으로 만든 것이다. 겨울철에 불을 피울 수 있는 벽난로의 아궁이도 인상적이다.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네 삶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그들도 우리였다. 단 두 번의 만남에서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에게 나는 쓰던 작은 카메라를 선물했고 그는 내게 혼을 기울인 그림 한 점을 주었다. 그는 삭막한 세상을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기계를 가지게 되었고 나는 남루한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꿈꾸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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