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아지매! 카메라 좀 그만 보소
- 시금치 캐는 아주머니, 봄을 이야기하다
요즈음 이래저래 정신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경남의 모 지역에 나올 책자의 사진 촬영을 제안 받았습니다. 사진 촬영과 출판사에서 요청한 사진 작업으로 인해 블로그도 소홀해지고 여행마저 한 달째 못 가고 있습니다. 이제 여행자라는 이름도 스멀스멀 사라지고 있습니다. 책 집필도 내년으로 미뤄야 할 듯합니다.
진주시 지수면에 있는 동지마을을 지나다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히 여기니 동행했던 마을 분이 시금치를 캐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수면은 남강이 S자 곡선을 그리며 지나가는 곳입니다.
강 건너는 대곡면이고 강 양쪽으로 모래톱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지금이야 이곳이 비옥한 농토로 부농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홍수가 나면 물이 잠기던 곳이었지요. 남강댐이 건설되고 긴 제방이 강을 따라 높게 쌓아진 후 비옥한 땅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강 주변에는 아직도 모래밭이 더러 있습니다. 흙을 덮고 일부 개간을 하여 지금은 각종 작물을 키우는 곳이 되었지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적어도 땅 아래 1m 정도는 모래층이라고 하더군요.
강변 토질 특성으로 인해 시금치와 우엉이 잘 된다고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시금치 재배를 하고 있는 땅 바로 아래에 우엉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뿌리를 얕게 내리는 시금치와 땅 아래로 파고드는 우엉이 환상적인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지요. 한때 골칫거리였던 땅이 이제는 농민들에게 더할 수 없는 땅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곳의 우엉은 대형마트에 납품까지 한다고 하니 어깨춤이 덩실덩실 나올 법도 합니다.
동지마을과 안계마을까지 한 바퀴 둘러보고 난 후 사진을 찍을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몇 군데를 둘러보았지만 처음에 보았던 곳이 제격이었습니다.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시금치를 캐고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무슨 촬영 나왔는가베.” 아주머니들이 수군거립니다. “아, 예 책자 촬영 때문에 나왔습니다.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아따, 그라모 모자도 벗고 얼굴도 닦아야 하는 디.” 아주머니들은 머리를 손질하고 옷매무새를 다듬느라 부산을 떱니다.
“초상권이 있는 디 돈을 주는 감요?” 농조가 섞인 말이 걸쭉합니다. “허, 어쩝니까? 그냥 찍으시면 안 될까요?” 이쯤 되면 콧소리로 애걸을 합니다. “예, 까짓것 그러지요 뭐.” “대신 사진 보내드릴께요.” 단양 구인사의 신도라는 분들은 부산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밭떼기로 시금치를 사서 절에 시주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하는지, 카메라를 봐야 하는지 등 질문이 폭주합니다. “하시던 대로 자연스럽게 일을 하시면 됩니다. 카메라 의식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앞의 두 아주머니가 시금치를 캐기 시작하자 뒷줄의 아주머니들도 하나둘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참 찍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계속 카메라를 의식합니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흘깃흘깃 보며 눈치를 살피더니 아예 일어서 버립니다. 결국 한 소리합니다. “아따 아지매 카메라 좀 그만 보소.” 주위의 소리에 아주머니도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30여분 정도 촬영을 하고 난 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디서 나왔소? 사진은 무엇에 쓴다요?” “아마 인터넷에도 나오고 책에도 나올 겁니다.” 깊은 인사를 하고 들판을 나왔습니다.
아직은 겨울이지만 시금치 들판에는 봄기운이 조금씩 느껴집니다. 유독 매서운 올 겨울도 시금치 캐는 아낙들 가랑이 사이로 슬금슬금 빠져나갔습니다. 봄이 오기는 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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