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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가을에 물든 구산선문 최초도량, ‘실상사’

 

 

가을에 물든 구산선문 최초가람, ‘실상사’

-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실상사

 
 성큼 다가온 가을, 여행자는 길을 떠났다. 지리산을 가까이 두고 있는 기쁨이야 말한들 시샘만 받지 않겠는가. 실상사로 향했다. 붉은 가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들판은 황금빛을 토하고 있었다. 초록의 싱그러움을 벗어날려는 나뭇잎의 절박한 몸부림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돌장승(석장생-중요민속자료 제15호), 원래는 모두 네 기였는네, 홍수로 하나가 떠내려갔다고 한다. 사진은 상원주장군.

 지리산 실상사, 지금은 다리가 놓여 있지만 예전에는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아기자기 놓여 있었다고 한다. 만수천을 건너면 여느 지리산의 산사와는 달리 평지에 둥지를 튼 실상사에 이르게 된다.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여러 봉우리를 꽃잎삼아 꽃밥에 앉은 실상사는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이다.



 개울을 건너기 전 서 있는 세 장승은 그 표정이 무섭고 당당하여 절을 찾는 이가 딴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한다. 원래 돌장승이 하나 더 있었는데, 1963년 홍수 때 떠내려갔다고 한다. 안경을 쓴 듯 튀어나온 두 눈과 주먹 같은 코, 하나같이 정교하면서도 거대하다.


대웅전인 보광전과 삼층석탑(보물 제37호). 삼층석탑의 상륜부는 온전하여 석가탑 상륜부 복원의 모델이 되었다.


 논길을 따라 얼마간 가면 천왕문이다. 입구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절이 이미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말한다. 천왕문에서 깊게 합장을 하고 절마당에 들어섰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은행나무 두 그루는 이미 가을 단장을 하고 있었다.


석등(보물 제35호). 높이 5m로 장중한 우수한 석등이다. 불을 붙일 때 오르내릴 수 있는 돌계단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평지에 들어선 실상사는 얼핏 보면 밋밋하다. 절로 가는 길도 울창한 수림 대신 평범한 논길이여서 적당한 긴장감도 느낄 수 없다. 그냥 고향에 온 듯 푸근함만 느껴질 뿐이다.

철조여래좌상(보물 제41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초기 철불의 걸작으로 꼽힌다. 약사전에 봉안되어 있다. 도선국사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땅의 기운을 막기 위해 세운 불상이라고 한다.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 영험한 불상으로 전해진다.

 절집에 들어서도 매한가지.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전각 하나 없는 곳이 실상사이다. 그러나 절집을 천천히 걷는 동안 그 생각은 이내 바뀌게 된다. 평지가 주는 단조로움은 지루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익숙한 우리의 눈이 은근하게 깊은 정취를 읽어내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약사전 꽃창살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인 828년에 흥척 증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한 뒤 남원으로 들어와 이 절을 세우고 실상선문을 열었다. 2대 수철화상과 3대 편운에 이르러 절은 중창되어 선풍을 떨쳤다.

보광전의 범종. 종을 치는 자리에 일본의 지도 비슷한 것이 있어 종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후 정유재란 때 불에 타서 숙종 때 중창하였으나 함양출신의 유생인 양재묵, 민동혁 등이 불을 질러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었다. 이듬해 월송스님 등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건물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실상사의 산내에는 백장암, 약수암, 서진암 등 유서 깊은 암자가 있어 산사의 예스런 정취를 느끼게 한다.


 소담한 경내의 분위기와는 달리 실상사는 우리나라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암자인 백장암에는 국보인 삼층석탑과 보물인 석등이 있다. 실상사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약수암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보물인 목조탱화가 있다.



 이외에도 경내에는 보물인 삼층석탑, 석등, 철조여래좌상, 증각대사 보도와 부도비, 수철화상 부도와 부도비 등이 있다. 입구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돌장승이 세 기가 있으니 실상사는 그야말로 문화재의 보고인 셈이다.


극락전


 특히 석등은 눈여겨볼만하다. 5m에 달하는 장중한 기품도 그러하거니와 불을 붙일 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돌계단까지 갖추고 있다. 석탑 또한 상륜부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어 불국사 석가탑 상륜부를 만들 때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증각대사 응료탑비(보물 제39호). 당대에 일반화된 용머리가 아니라 거북머리를 그대로 두었다.


 이뿐만 아니라 약사전 안의 철불과 보광전 안의 범종은 일본과 관련이 깊다.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설에 따라 일본으로 흘러가는 땅의 기운을 막기 위해 약사전 자리에 절을 짓고 불상을 세웠다.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 이 불상은 나라에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영험한 불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증각대사 부도(보물 제38호)


 보광전 안 범종의 종을 치는 자리에는 일본의 지도 비슷한 무늬가 있는데, 이 종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있어 일제 말기에는 주지가 일본 경찰한테 문초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수철화상 부도(보물 제33호)


 약사전은 현존하는 실상사 건물 중 조선 중기의 격식을 갖춘 유일한 건물이다. 약사전의 창호는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 무궁화꽃을 닮은 꽃창살은 일부 파손이 되었으나 화려한 미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보광전 옆에는 팔작지붕의 칠성각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요사채를 지나면 극락전으로 이어지는 짧지만 호젓한 길이 있다. 개울을 건너면 연이 무성한 연못이 있고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극락전이 숲에 둘러싸여 있다.



 극락전 일대는 숲이 무성하여 잠시 거닐며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그러면서 짬짬이 부도와 부도비를 감상하는 맛이 그윽하다. 특히 증각대사 부도비의 머리는 당대의 일반화된 용머리가 아니라 거북머리가 그대로 있어 눈여겨볼만하다.



 풀이 눕는다. 긴 여름 뙤약볕의 수고로움을 벗어 던지고 차분히 가을에 눕는다. 바람이 분다. 갈대가 바람에 눕자 코스모스도 고개를 숙인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