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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관동팔경의 제일 경치, 경포대




 

관동팔경의 제일 경치, 경포대


 어느 지방을 가도 경관이 빼어난 곳이라면 ‘제일’이라는 수식 어구는 늘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명승지를 대표하는 관동팔경도 저마다 자기 고장의 경치를 으뜸으로 치고 있다. 어느 편이 좀 낫고 어느 쪽이 좀 처지는지를 따지기보다는 자기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겨 어여삐 보면 그만이다.


 

 관동팔경의 제일 경치로 꼽히는 경포대도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큰 현판이 걸려 있어 이곳이 으뜸이라는 걸 강조하고 있다. 경포대의 풍경은 어떠할까. 율곡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에는 “하늘은 유유하여 더욱 멀고, 달은 교교하여 빛을 더하리라”하는 구절이 있다.


 

 ‘거울처럼 맑은’ 경포호를 차분히 내려다보고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경포대이다. 멀리 동해에서 달이라도 뜨면 달빛은 기둥이 되어 경포호에 누워 금빛비단을 호수에 깔아놓은 듯한 선경을 자아냈다고 한다.



 

 경포대에서 보면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는 풍류가 있다. 하늘에 뜬 달이 하나요, 바다에 뜬 달이 둘이요, 호수에 뜬 달이 셋이요, 술잔의 달이 넷이요, 그대의 눈동자에 뜬 달이 다섯이라는 것이다. 음풍농월을 즐기는 옛 풍류객들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이토록 경치가 빼어난 경포대이지만 경포해수욕장에 가려 찾는 이들은 의외로 적다. 호숫가 찻길 건너편 언덕 위에 있는 경포대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벚나무에 가려 있어 쉽게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강릉까지 왔어 경포대를 보지 못하고 간다면 알맹이는 보지 못하고 겉만 훑고 가는 아쉬운 여정이 될 것이다.


 

 바다와 호수를 안고 있는 빼어난 경포대는 예부터 시인묵객들이 자주 찾았다. ‘경포대’라는 현판 중 전서체로 쓴 것은 조선 후기의 서예가 유한지의 글씨이고 해서체는 순조 때의 명필 이익회가 쓴 것이라고 한다.



 

 제일강산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썼다는 주장과 조선 전기 4대 서예가 양사언이 썼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뒤의 ‘강산’이라는 글씨는 ‘제일’과 서체가 다른 걸로 봐서 후세 사람이 써서 덧붙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숙종의 어제시, 유명한 문장가로 알려진 강릉부사 조하망의 상량문 등 여러 명사들의 글이 걸려 있다.


 

 현판을 보고 난 뒤 누대에 오르면 경포호가 한눈에 펼쳐진다. 다소 어두운 내부와는 달리 호수 전망은 빼어나다. 여름이지만 바람이 몹시 불어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몸이 떨릴 정도로 서늘하였다.


 

경포대는 철저하게 경포호를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도록 위치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 설정하여 적절한 공간 형태를 부여하고 있다. 일찍이 강릉사람들은 경포대에서 볼 수 있는 여덟 경치를 일러 경포팔경으로 불러왔다.


 

 경포대는 고려 충숙왕 13년인 1326년에 당시 강원도 안렴사 박숙이 지금의 방해정 뒷산 인월사 옛터에 세웠는데 조선 중종 3년인 1508년에 강릉부사 현급이 오늘날의 위치로 옮겨 지은 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