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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마침내 문을 연 비밀의 정원, 무기연당

 

  마침내 문을 연 비밀의 정원, 무기연당

- 경남을 대표하는 전통정원, 함안 무기연당




 

 흔히 우리나라 3대 전통 정원이라 하면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 영양의 서석지를 일컫는다. 이들 못지않게 경남에도 지극히 아름다운 전통 정원이 있으니 바로 함안 땅에 있는 ‘무기연당’이다.



 

 함안 땅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남고북저의 땅"이다. 그러다보니 물줄기가 남강이 있는 서북쪽으로 흘러 흔히 “물이 거꾸로 흐르는 땅”이라 하였다. 풍수적으로 따지면 왕조시대에는 불경스러운 곳이라 홀대를 받을 만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문이 잠겨 있어 한 시간을 기다렸다. 담장 너머로 살짝 본 무기연당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고향 함안에서 죽을 때까지 단종을 흠모하며 은거하였던 어계 조려가 있고,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난을 평정한 국담 주재성이 있기 때문이다.


감은재는 국담의 장손인 효자 주도복의 서재였다.
 

 어계는 군북면에 채미정을 지었고 국담은 칠원면에 무기연당을 지었다. 함안을 대표하는 전통 정원은 채미정과 어계의 손자인 조삼이 지은 무진정, 국담이 지은 무기연당이 있으니 그 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단연코 “무기연당”이다.


국담 선생의 11세손인 주환채옹이 연못의 부유물을 걷어내고 있다. 종손의 무기연당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에 가면 주씨 고가가 있다. 주씨 고가는 약 300년 전에 지어진 국담 주재성의 생가이자 주씨 집안의 종가이다. 이 집은 대문채인 솟을삼문과 사랑채인 감은재, 살림집인 안채, 국담의 불천위를 모신 사당인 불조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산인 양심대와 소나무
 

 주씨 고가의 솟을삼문에는 충신 정려와 효자 정려가 나란히 있어 더욱 빛이 난다. 충신 정려는 국담 주재성이 영조 4년인 1728년에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자 함안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워 그가 죽은 후 영조가 내린 것이다. 효자 정려는 국담의 장남인 감은재 주도복이 어머니의 병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목숨을 연장케 한 효행을 기려 내린 것이다.



 사실 주씨 고가는 감은재의 당당함을 보아도, 5칸임에도 맞배지붕이라는 점이 특이하지만 여느 고가와 다름없는 안채에선 별다른 감동이 없다. 특히 안채는 생활의 편리를 위해 개조되어 있어 옛 고가의 정취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곳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무기연당’ 이 있어서이다. 주씨 고가의 담장과 맞붙어 있는 무기연당은 그 모습을 쉬이 드러내지 않으려는지 출입문인 한서문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주인은 간 데 없고 한서문은 굳게 잠겨 있다. 발을 돋아 담장 너머를 훔쳐보니 그 모습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연세 지긋한 노인 한 분이 솟을 대문을 들어선다. 인사를 건네고 문을 열어 주십사 부탁드리니 기꺼이 그러마라고 하였다.


1971년에 세워진 충효사와 영정각
 

 노인은 국담 선생의 11세손으로 올해 77세인 주환채옹이다. 시골 노인답지 않게 희고 인자한 얼굴과 흩트림 없는 걸음걸이는 선비의 후손답게 당당하다. 종손의 안내를 받아 무기연당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풍욕루
 

 한서문을 들어서면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네모난 깊은 연못에 둥근 석가산을 쌓아 그 맛이 단아하다. 연못 둘레로는 이중으로 석축을 단단히 쌓아 작은 연못을 튼실하고 웅장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영양 서석지의 석축도 견고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이곳도 이중 석축이 있어 더욱 연못을 빛내고 있다.


하환정은 작지만 무기연당의 중심건물로 가장 오래되었다.
 

 네모진 연못 왼편으로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에 연못 쪽으로 난간을 내고 뒤편에 방을 낸 하환정과 정면 3칸 규모에 댓돌을 높이 쌓아 위풍당당한 풍욕루가 있다. 오른쪽으로는 근래에 세워진 충효사와 영정각이 있다.



 

 무기연당의 지극한 아름다움은 공간 배치의 적절함에 있다. 단단히 쌓은 장방형의 석축과 연못인 ‘국담’, 네모진 연못 가운데에 동그랗게 쌓아 올린 석산인 ‘양심대’, 소박하지만 고졸하지 않은 ‘하환정’, 좁은 공간을 답답하지 않게 하는 풍욕루가 있어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연못가에 심어진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는 무기연당을 더욱 어여쁘게 만든다.


                                 연못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층계를 만든 섬세함이 돋보인다.
 

 이 정원이 조성된 시기에 대해 종손은 이의를 제기하였다. 여행자를 하환정으로 안내하더니 현판의 중수기를 보라고 하였다. 현판에는 국담(연못)이 조성된 시기를 정묘년인 1717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종손은 이 연못이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고 난 후인 1728년에 의병과 관군들이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뜻으로 연못을 팠다는 기존의 주장을 문제 삼았다. 즉 무신년인 1728년이 아니라 그 11년 전인 정묘년인 1717년에 사람을 모아 국담을 지었다는 주장이다. 중수기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의 별도 연구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무기연당은 중요민속자료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남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에 있다. 무기연당과 맞붙어 있는 주씨 고가에는 아직 종손이 살고 있다. 무기연당은 평소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사전에 미리 연락하거나 현지에 가서 관람을 요청하면 가능하다. 종손 분의 무기연당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그만큼 정원이 잘 손질되어 있다. 종손은 여행자에게 글을 쓸 때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조용히 어지럽지 않게 관람을 부탁한다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무기연당은 연못인 국담, 석산인 양심대, 하환정, 풍욕루,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우리 전통 정원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이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