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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붉은 단풍에 불타는 봉화 ‘청암정’



 

붉은 단풍에 불타는 봉화 ‘청암정’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다. 한 번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계절마다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바로 그것이다. 닭실마을. 마을 서쪽의 산에서 바라보면 금닭이 알을 품는 ‘금계포란’ 형국이라고 한다. 마을 이름인 유곡을 한글로 풀면 '닭실‘이 된다. ’달실‘이라고도 부른다.


 

 문수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마을 앞으로는 개천이 휘감아 돌며 평탄한 들판을 이루고 있는 옛 마을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곳을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 경주의 양동과 함께 ‘삼남의 4대 길지’로 꼽았다.


 

 도로변에서 얼핏 보이는 이 마을은 한눈에 보아도 오래된 양반마을이라는 생각이 바로 든다. 안동 권씨 집성촌인 닭실마을의 서쪽 끝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 충재 권벌 선생의 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번듯한 주차장까지 있어 이곳도 사람들이 많이 찾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종가로 가는 길에는 아직 베지 않은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시골의 한가로움을 느낄 수 있다. 종가의 대문을 들어서니 사랑채가 전면에 보이고 중문 안쪽으로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건만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하려는 찰나, 청암정 일대가 너무 휑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이곳에 유물각이 있어 종가의 균형을 깨뜨리는 갑갑함을 주었다면 유물각이 뒤쪽으로 옮긴 지금은 청암재와 충재 일대가 도리어 황량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별도의 조경이 필요하지 않나 쉽다.


 

 청암정은 거북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운 정자로 충재선생이 1526년 봄에 자신의 집 서쪽에 재사를 짓고 다시 그 서쪽 바위 위에 6칸의 청암정을 지어 주변에 물을 돌려 대를 쌓았다고 한다.


 

 거북바위 위에 丁자 모양으로 지어진 청암정은 서재인 ‘충재’에서 공부하다가 바람을 쐴 양으로 지은 휴식공간이다. 정자 안에는 미수 허목, 번암 채제공, 퇴계 이황 등 조선 중후기 명필들의 글씨로 새긴 현판이 즐비하니 옛 문인들이 이 청암정의 경치를 얼마나 칭송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건물 주위로는 연못을 파고 물을 둘러 돌다리를 건너야 정자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운치가 있다. 정자 주위로는 향나무, 단풍, 느티나무 등이 있어 사시사철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청암정 주위로는 단풍이 붉게 물들어 얼핏 보면 정자가 불에 타는 듯하다. 오래전 봄과 여름에 이곳을 다녀갔건만 가을이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아쉬움이 늘 있었는데 오늘 보니 선경이 따로 없다. 다만 가을 가뭄이 심해서인지 물 한 방울 없이 메말라 있는 연못이 아쉽다.


 

 충재 종택과 청암정, 석천정사가 있는 석천계곡으로 이어지는 이곳의 경관은 명승 및 사적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집 옆의 유물각에는 충재일기(보물 261호), 근사록(보물 262호) 등 문화재 467점이 전시되어 있으니 들릴만하다. 또한 충재 선생의 제사를 모시면서 만들어온 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이곳의 한과도 유명하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