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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옛 풍경 그리운 호숫가 정원, ‘방해정’




 

옛 풍경 그리운 호숫가 정원, ‘방해정’

 

 문득 꿈꾼다. 호숫가에 작은 정자 하나 짓고 앞마당 끝에는 배 한 척이 있는 집. 굳이 배를 저어 가지 않더라도 대청마루에서 낚시 대를 드리울 수 있는 집. 하얀 백로라도 찾아주면 반갑고 어디선가 날아온 갈매기를 벗 삼으며 살고 싶은 그런 집을 꿈꾼다.


 

 방해정. 경포호를 바라보며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경포 호안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 이곳 방해정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방해정은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경포호와 방해정 사이로 도로가 나면서 집 바로 앞까지 호수여서 배로 출입을 했다던 옛 흔적은 50여 년 전의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다. 사진을 보면 물이 안마당까지 올라와 있고 배 한 척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유를 잃어버린 세대, 대신 편리함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방해정 앞 도로에 서면 드넓은 경포호가 시원하게 보인다.



 

 집 앞 대문이 잠겨 있었다.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며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해 본다. 인기척 하나 없다. 한 20여 분 흘렀을까. 우두커니 호수만 바라보고 있으니 어디선가 인기척 소리가 난다.


 

 다시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미니 노인 한 분이 분재를 손질하고 있었다. 문 좀 열어 주십사. 사진을 찍었으면 한다고 하니 기꺼이 문을 열어 주신다. 마당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분재로 가득하다. 족히 100여 개는 충분히 넘겠다. 분재가 많은 연유를 물으니 노인의 말은 명쾌하다. “건강하려고 합니다”


 

 많은 분재를 가꾸려면 하루라도 쉴 틈이 없어 자연 운동이 된다고 하였다. 노인이 이 집에 살게 된 것은 20여 년 전이라고 한다. 원래 방해정은 선교장의 부속 별장으로 지었다고 한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선교장 소속으로 있다가 20여 년 전에 자신이 이 집을 샀다고 하였다.


 

 분재가 많아 방해정의 전체를 살피는 데 조금은 방해가 되는 듯하다. 정자가 주는 운치도 다소 떨어지는 듯하지만 분재를 가꾸는 노인의 섬세한 손길이 집안 곳곳에 미치니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는 다행이다 쉽다. 사실 한옥은 사람이 살아야 제대로 보존이 된다.


 

 방해정은 조선 철종 10년인 1859년에 통천군수를 지낸 이봉구란 이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강릉 객사를 해체할 때 자재의 일부를 가져다가 선교장의 부속별장으로 지었다고 한다. 지금 방해정이 있는 자리는 원래 삼국시대의 고찰인 인월사터였다고 한다. 주변 경치가 좋아 신라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했던 곳이었다.


 

 방해정은 정자이기는 해도 온돌방과 마루방, 부엌을 갖추고 있어 살림집으로도 사용하였다. 기실 건물 자체보다 호수를 끌어안은 조경이 더 좋다. 마루에 올라서면 경포호의 정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