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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우리나라 3대 누각, 밀양 '영남루'




 

우리나라 3대 누각,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영남루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의 하나로 꼽혀오고 있다. 강을 끼고 있는 도심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이 누각들은 우리나라 누정을 대표하는 데 손색이 없다. 남원의 광한루와 삼척의 죽서루도 이들과 어깨를 견줄만하다.


 

 밀양강의 높은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는 영남루는 밀양아리랑과 함께 밀양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다. 밀양아리랑의 경쾌함이 영남루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어 누각 위에 서면 그 풍광의 시원함에 절로 흥이 겨워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


 

영남제일루(위)라는 편액은 11세의 이증석이 썼다고 적혀 있고  영남루(아래)라는 편액은 7세의 이현석이 썼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영남루는 밀양군 객사의 부속건물로, 관원들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위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영남루가 처음 지어진 것은 고려 공민왕 14년인 1365년이었다.



 

 원래 이 터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영남사라는 절이 종각인 금벽루만 남아 스러진 채 있었는데 김주라는 군수가 절의 이름과 같은 영남루를 지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증축과 개축을 통하여 헌종 10년인 1844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의 영남루가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이층 팔작집이다. 왼쪽의 능파당과 오른쪽의 침류각이 영남루의 양 날개처럼 맞붙어 있어 건물을 더욱 웅장하게 보이도록 한다. 특히 오른쪽의 침류각은 본루와 층층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위에 지붕을 연속으로 얹어 밀양아리랑의 곡처럼 매우 경쾌하고 율동적이다.



 

 영남루 본루의 정면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영남루라는 현판이다. 구한말의 명필 성파 하동주가 썼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누각 위에 올라서면 보이는 내부의 현판들이다. 강변 쪽의 영남루라는 편액은 7세의 이현석이 썼다고 적혀 있고 영남제일루라는 편액은 11세의 이증석이 썼다고 적혀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영남루에 올라서면 강줄기가 시원하다. 강 건너 삼문동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의 철길로는 기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간다. 내려다보는 풍경도 시원하지만 누각 내부를 요모조모 살피는 재미도 쏠쏠하다. 강바람을 맞으며 마루 위를 이리저리 걷다 보면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 강을 끼고 내려다보는 재미도 좋지만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영남루의 모습 또한 시원하다.



 

 영남루와 마주보고 있는 건물은 천진궁으로 옛 객사건물의 하나였다가 1957년에 대종교 산하단체인 단군봉안회에서 천진궁이라 이름짓고 단군 영정과 역대 8왕조의 시조의 위패를 모셨다. 천진궁 앞의 바위에는 꽃모양을 한 바위인 석화가 있어 눈길을 끈다. 밀양루 옆의 박시춘 생가와 밀양시립박물관, 무봉사 석조여래좌상, 아랑각도 들러볼 만하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