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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애불

입이 절로 벌어지는 해남의 석굴암 ‘북미륵암’



 

입이 절로 벌어지는 해남의 석굴암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북미륵암 가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숲길 좋은 대흥사에서 표충사 앞의 산길을 한 시간 남짓 오르면 북미륵암에 이른다. 여행자는 일지암을 먼저 둘러볼 요량이여서 일지암으로 향했다. 대흥사에서 일지암까지 30여 분, 다시 가파른 산길을 올라 북미륵암을 향했다.


 

 대흥사에서 북미륵암까지 곧장 이어지는 길은 가파르고 무미건조하다. 차라리 우리나라 차의 성지 일지암에 들러 차향을 느껴보고 숲길과 너럭바위길이 즐거운 산길을 택해 북미륵암으로 가는 게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숲은 깊고 나무는 향을 내뿜었다. 예사롭지 않은 오르막에 조금은 저어했지만 뚜벅뚜벅 산길을 올랐다. 이마에 땀이 비 오듯 한데 미처 챙기지 못한 생수가 원망스럽다. 너럭바위에 앉아 잠시 다리쉼을 하다 아예 몸을 바위에 뉘어 버렸다. 풀벌레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산길을 잘못 택하였는가하는 불안감마저 엄습할 정도로 오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다시 산길을 오르니 갈림길이 나오더니 물이 콸콸 솟는 샘이 나타났다. 고무통을 통해 물이 나오는 이 샘은 여름 산행의 수고로움을 덜기에 충분하였다. 오른쪽으로 가면 진불암, 위쪽 길로 곧장 가면 만일재와 두륜봉으로 이어진다. 나는 왼쪽 길을 잡아 북미륵암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흙길이 아니라 큼직한 바위가 있는 너덜길이다. 암자에 다다라서 스님 한 분과 시주 한 분을 만났다. 깊게 합장하고 고개를 돌아서니 암자의 해우소가 대숲에 반쯤 가린 채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재촉하다 순간 혼비백산하였다. 뱀이었다. 살모사였다. 시골에서 나서 자랐지만 여행자는 뱀을 정말 싫어한다. 저도 놀라고 나도 놀란 나머지 서로의 길을 재촉하여 걸음을 옮겼다.



 

 암반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용화전에 올랐다. 용화전 앞마당에 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절로 벌어졌다. 열린 문 사이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애불이 나의 시선을 끌어 당겼다.


 

 더위와 땀은 뒷전이고 법당에 들어서서 먼저 절을 올린 후 마애불을 조심스레 올려다보았다. 험한 산길은 아니었지만 무척 더운 날의 산행에 지친 피로는 마애불을 보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올라온 보람이 있다는 말 자체가 속되어 감히 내뱉지를 못한다. 오랫동안 기억의 망각 속에 내버려두었던 석굴암 본존불과 서산마애불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오늘 다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국보 제308호이다. 이 불상은 원래 보물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가 용화전을 해체ㆍ보수하던 중 건물에 가려졌던 공양 천인상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2005년에 국보로 승격되었다.


 

 현재 남한에서 국보로 지정된 마애불은 흔치 않다. 얼마 전 보물에서 국보로 지정 예고된 경주 칠불암 마애불, 두말할 필요도 없는 서산삼존마애불,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봉화 북지리 마애불좌상, 영암 월출산 마애불좌상 등이 국보급 마애불이다. 이것만 보아도 이곳 마애여래좌상이 가지는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높이 485cm의 거불인 이 마애불은 북미륵암의 주존불로 항마촉지인을 결한 여래좌상이다. 장대한 신체의 비례가 알맞고 전체적으로 장중한 불격을 풍기는 마애여래좌상은 그 앞에 목조 전실을 달아 불전 형식을 갖추었다. 전각의 이름이 용화전이니 마애불은 도솔천에 계신 미륵불로 볼 수 있다. 마애불은 얕은 저부조이지만 그 조각수법이 빼어난 걸작품이다. 특히 마애불 상하좌우 사방의 공양상들은 뛰어난 양감과 자연스러운 신체조형으로 눈길을 끈다.


 

 용화전 위쪽 산자락에는 삼층석탑이 있다. 이 삼층석탑 앞에서 바라보는 두륜산 풍광도 빼어나다. 표현할 수 없는 장중한 아름다움에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터벅터벅 산길을 내려오니 흰 진돗개 한 마리가 산을 올라온다. 유선관에서 온 진돗개일까. 저도 나도 반갑기는 매한가지였으나 각자의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 여행팁 북미륵암은 해남 대둔사(대흥사)의 표충사에서 산길을 따라가면 된다. 400여 미터 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일지암, 왼쪽으로 1km 정도 가면 북미륵암(북암)에 이른다. 시간이 된다면 우리나라 차의 성지 일지암을 들러 북미륵암으로 가는 길을 추천하고 싶다. 대흥사에서 북미륵암으로 바로 가는 길은 1.4km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대흥사에서 일지암까지는 1km 정도로 30여 분이 소요되고 여기서 북미륵암까지는 1.2km 정도로 1시간 정도가 걸린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